근로자 23명의 생명을 앗아간 화성 아리셀 배터리공장 화재는 사측의 군납비리로 무리하게 재납품을 강행하다 발생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인력 공급업체로부터 사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비숙련공이 대거 투입되는 불법파견까지 자행됐다. 사망자 23명 중 20명은 비정규직으로, 인력 공급업체 소속이었다. 부정이 부정으로 이어져 결국 끔찍한 대형 참사를 야기한 것이다.
아리셀은 2021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47억원 상당의 전지를 군에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납 제품의 품질검사는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에서 담당하는데, 검사는 타 기관의 기능시험을 통해 시험성적서를 제출하거나, 무작위로 시료를 선정해 품질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아리셀은 이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리셀은 품질검사용 전지를 별도로 제작한 뒤 이미 선정돼 봉인 상태였던 시료와 바꿔치기하고 서명까지 위조했다. 또 시험성적서의 데이터를 조작해서 제출해 검사를 통과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지난 4월 기품원 관계자가 밀봉 서명이 위조된 사실을 파악하면서 불법행위가 들통났고, 아리셀은 8만3천여개의 4월 납품분을 재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6월분 6만9천여개 납기일까지 다가오자 지난 5월 '하루 5천개 생산'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산목표를 잡은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리셀은 비숙련공을 대거 투입하고, 불량 제품도 상품화했다. 숙련공이 작업해야 할 메쉬 절단 공정에 일용직 근로자를 투입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비숙련공이 작두로 수작업하는 과정에서 절단면에 뾰족한 형태의 잉여 부분이 발생했고, 외부에서 들어온 금속 이물질과 함께 폭발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리셀이 생산해 모회사인 에스코넥이 군에 납품한 리튬배터리가 2022~2023년 이미 3차례의 파열사고를 일으킨 사실도 충격적이다. 2019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군납 리튬배터리 파열사고는 총 31건에 달한다. 군에 보관돼 있거나 사용 중인 제품들도 전수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아리셀의 법과 절차를 무시한 대담성에 말문이 막힌다. 근로자의 안전을 외면한 비윤리적 경영행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고질적인 군납 비리부터 생산현장의 인력·안전 관리까지 총체적이고 강력한 조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