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그림책 되며 전세계인에 사랑”

그림책꿈마루의 ‘물의 이미지’와도 부합

日 세키구치 코타로 첫 해외 전시도 진행

개관 1주년을 맞아 군포 그림책꿈마루가 전시한 일본의 조각가 세키구치 코타로의 ‘Big Mermaid’. 세키구치 작가가 해외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4.9.3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개관 1주년을 맞아 군포 그림책꿈마루가 전시한 일본의 조각가 세키구치 코타로의 ‘Big Mermaid’. 세키구치 작가가 해외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4.9.3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흔히 인어공주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디즈니 만화 속 귀엽고 발랄한 소녀의 모습이다. 늘씬한 몸매와 매끈한 꼬리. 바닷속에서만 살아 인간 세상의 물정은 전혀 모르는 순진무구한, 그래서 매력적인 아가씨.

3일 전국 유일 그림책 복합문화공간 ‘그림책꿈마루’에서 마주한 ‘Big Mermaid’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황토색의 매우 큰 형체는 반인반어의 모습인 듯 하면서도 억겁의 세월 바다 깊은 곳에 잠들어 어느덧 바다와 일체가 된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되 머리칼은 문어의 발이었고 몸통엔 꽃게며 불가사리, 해초 등이 빼곡했다. 엎드린 형상은 마치 푸른 바다 그 자체를 떠받들고 있는 듯 했다. 그 옆으로 작은 물고기들이 줄지어 헤엄쳤다. 빅 머메이드는 단순히 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은 아니었다. 넓고 큰 바다, 자연 그 자체와 혼연일체인 거대한 존재로서의 인어공주를 표현했다.

‘Big Mermaid’는 일본의 조각가 세키구치 코타로의 작품이다. 세키구치 작가가 이 작품을 해외에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세키구치 작가는 “매우 긴장되고 두려웠지만 따뜻하게 맞아줘서 좋았다. 그림책꿈마루가 매우 아름답고 독창적인 곳이라, 이런 곳에 작품을 전시할 수 있어 두근거렸다. 물의 이미지를 담은 색채, 장치들도 있어 인어공주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을 설치하는 게 조화로웠다”며 “동화 속 인어공주는 15세다. 어린 나이에 물거품이 돼 사라지는 것은 너무 슬픈 얘기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긍정적이며 건강한 웃음을 가진 인어공주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리틀 머메이드’가 아닌 ‘빅 머메이드’를 만든 것이다. 현실 속 아이들은 기후 변화와 전쟁 등 각종 어려움에 놓여있다. 아이들의 미래가 밝고 즐겁길 바라는 희망을 담은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림책꿈마루 1주년 특별 기획전에 전시된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타케이 타케오의 ‘인어와 항아’. 나전으로 인어를 표현한 게 특징이다. 2024.9.3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그림책꿈마루 1주년 특별 기획전에 전시된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타케이 타케오의 ‘인어와 항아’. 나전으로 인어를 표현한 게 특징이다. 2024.9.3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빅 머메이드를 지나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니 푸른 빛의 장막이 설치돼있었다. 마치 여러 물 줄기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거대한 커튼을 형성한 듯한 모습이었다. 귓가엔 파도소리가 계속 울려퍼졌다. 장막을 헤치니 세계 각국의 인어공주 그림책을 전시한 공간이 나왔다. 이 중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타케이 타케오의 1965년 작품인 ‘인어와 항아’ 작품이 눈에 띄었다. 북방전복 껍데기를 이용한 나전(螺鈿) 방식으로 인어 등을 표현해낸 게 특징이다. 인어공주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뿐 아니라, 이를 패러디한 책들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전시 공간을 뒤로 하면 인어공주가 바닷속에서 마주했을 세계를 미디어 아트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거북이나 물고기 등이 평화롭게 헤엄치는 바닷속이 눈 앞에 펼쳐진다. 바닥에 설치된 발판 위로 올라가면 음악이 재생돼, 신비로운 느낌이 배가 된다. 발판은 총 3개인데, 이를 한 번에 밟으면 일순간 화면이 까매진다. 칠흑같은 어둠은 마치 심해에 있는 느낌이다. 빛을 발하는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한 곳으로 몰려가고, 어느덧 커다란 구체가 된다. 바다를 헤치고 다시 현실로 나오면(?)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어공주 그림책들이 전시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책꿈마루 1주년 특별 기획전 중 하나인 미디어 아트. 인어공주가 살던 바닷속 세상을 표현했다. 2024.9.3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그림책꿈마루 1주년 특별 기획전 중 하나인 미디어 아트. 인어공주가 살던 바닷속 세상을 표현했다. 2024.9.3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그림책꿈마루는 본래 안양 포일정수장에서 끌어온 물을 보관하던 배수지가 있던 곳이다. 배수지였다는 점을 남기기 위해 세키구치 작가의 말처럼 공간 전반에 물의 이미지를 더했다. ‘인어공주’가 이곳의 1주년을 장식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동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안데르센의 작품들이 그림책 역사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도 주된 요인이 됐다.

이번 그림책꿈마루 1주년 특별 기획전을 총괄한 신명호 일본 무사시노 예술대학 교수는 인어공주를 테마로 한 데 대해 “안데르센 작품의 삽화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역할과 존재감을 보여주고 그림책의 역사를 대변한다. 이런 의미에서 안데르센 작품으로 1주년 특별전을 기획하게 된 것”이라며 “특히 ‘인어공주’는 당초 글로 쓰여진 문학에서, 작품 세계의 이해를 돕고 낭만적 분위기를 살리는 삽화가 담기면서 예술적 의미를 더하게 됐다. 그 결과 전세계적으로 누구나 아는 이야기가 됐고, 하나의 소재가 됐다. 현재는 작품의 메시지, 이야기의 세계관이 재해석되고 있다. ‘인어공주’는 문학에서 그림책이 된 순간 더 큰 세계와 사랑을 담은 작품으로서 성장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해당 기획전은 오는 11월 24일까지 진행된다. 오는 7~8일엔 ‘Big Mermaid’를 만든 세키구치 작가가 종이와 테이프를 활용해 인어공주의 친구들을 만드는 ‘페이퍼 판타지’ 워크숍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