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사건·사고 연일 발생
원인 알아야 예방할 수 있고
'누구 탓' 알아내는것 중요하지만
결과 어떻게 볼것인가가 더 중요
행복·불행 한끗차 귀인이론서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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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규 전북대 석좌교수
연일 폭염에 시달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사건 사고들을 바라보며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가 혹은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지난 몇 년 간을 코로나19 팬데믹에 시달리면서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경우를 보았고, 최근에는 평범했던 어느 평일 저녁 횡단보도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퇴근을 하던 사람들이 이유 없이 목숨을 빼앗겨야 했던 사건이라든지,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아파트 문 앞에서 살인을 당하는 등 도저히 이성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따져서는 알 수 없는 비극적인 일들을 근 몇 달 사이에 겪고 있다.

어쩌면 폭염보다도 이러한 사건들이 우리의 심리적 불안정성을 자극하고 인간에 대한 불신과 사회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이번 칼럼에서는 도대체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심리적 위안인 '행복'이란 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행복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 짚고 가야 할 것들이 있다. 위에 나열한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누구 탓일 것인가?

이를 사회심리학에서는 '귀인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귀인이란 'locus of control(통제위치)'이라고 할 수 있으며 행복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이라 볼 수 있다. 즉 사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 가를 찾아내는 이론이다.

귀인은 크게 내적 귀인과 외적 귀인으로 나눌 수 있다. 내적 귀인은 그 사건의 원인이 사람의 내적인 요소 즉, 지능이나 성격, 타고난 기질 등에서 찾아내는 것이라 '내탓'이라고 볼 수 있고 외적 귀인은 사건의 원인이 철저히 외부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더 쉽게 얘기하면 내적인 귀인의 예로는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볼 수 있고, 외적인 귀인의 예로는 운이나 운명, 과제의 어려운 정도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사건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너도 나도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코로나19는 도대체 왜 시작된 것일까? 어느 나라에서 시작되었대?" 혹은 "그 사고 원인이 급발진이었대? 아니면 실수래?" 등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 지 그 귀인을 찾고자 무단한 노력을 한다.

왜냐하면 그 원인을 알아야 예방을 할 수 있고 그러한 일이 앞으로 나에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으므로 누구의 탓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이다.

다만 그 원인을 찾을 때 감당할 수 없는 불행한 일이 개인에게 닥쳤을 경우에는 우리는 '절대로' 내적 귀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나 설명할 수 없으며 자연재해에 가까운 일이 우연히 일어났을 때는 이는 외적인 귀인을 통해서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 사람이 거기 없었더라면…', '내가 마중을 나갔더라면…'과 같이 무언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었을 것이라는 내적 귀인은 남은 자들에게는 너무나 큰 아픔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특히 사고로 가족을 잃게 되었을 때, 유가족들은 하염없는 시간을 자신의 탓을 하며 불행한 삶 속에서 지낼 수 있다.

최근 미디어에서는 수많은 불행한 사건과 사고를 파헤치고 알아내고 마치 현미경을 보듯이 앞다투어 영상을 선정적으로 내보내고 다루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렇듯 원인을 알아내는 것만큼이나 이러한 사건의 결과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원인만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그저 한 발 내딛는 차이인 것처럼 어쩌면 행복과 불행도 내 생각의 한 끗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 귀인이론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정명규 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