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대표 상권인 일명 '인계박스' 골목에 연두색 안전(안심)부스가 서있다. 9월 4일 저녁, 문 열린 부스로 들어가 닫힘 버튼을 누르니 수원시 도시안전통합센터에서 즉각 반응한다. "관제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관제요원의 음성이 들린다. CCTV로 부스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는 관제요원의 안내를 받아 경찰이나 119구급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1월 새벽 2시께 만남을 강요하는 남성에게 위협받던 여성이 무사히 구조되기도 했다. 부스 안에는 자동심장충격기(AED)와 소화기 두 대도 비치되어 있다. 수원시는 인계동을 포함해 곡반정동·지동·세류3동·매산동·매탄3동 각 1개, 영통3동 2개 등 총 8개의 안전부스를 운영 중이다.
다른 지역의 안전부스는 어떨까. 성남 판교의 한 백화점 앞 보도에 설치된 안전부스는 한눈에 봐도 낡았다. 먼지가 수북하고 담배꽁초들이 널브러진 흡연박스 신세가 됐다. 녹슨 CCTV와 불 꺼진 비상벨은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다. 2017년 한 민간업체가 도로점용허가를 받아 설치했다는데 분당구청은 관리권한도 없단다.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카페거리의 안전부스 역시 이름값을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비상전화기는 먹통이고 내부는 담배냄새에 찌들어있다.
스토킹 범죄와 묻지마 사건이 횡행한다. 2012년 여의도 흉기 난동,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2023년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사회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올 들어 7월 서울 은평구 아파트 단지에서 30대 남성이 일본도로 이웃 주민을 살해하고, 8월에는 안산에서 10대가 같은 학원을 다니는 또래 여학생을 흉기로 찌르고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에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당연하다.
안전부스는 2015년 경기도 광주 경화여고 인근에 국내 최초로 설치돼 서울·부산·제주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쓸모가 약해진 공중전화 부스 활용과 강력범죄 예방이라는 '착한 컬래버'는 공감을 끌어냈다. 하지만 시행 9년 만에 대다수 안전부스는 홍보 부족과 관리 부실로 외면받는 모양새다. 부스 하나에 수천만원 들여 만든 사회안전망인데 방치하는 건 예산낭비이고 직무유기다. 만약 누군가에게 쫓기는데 안전부스 문이 안 열린다면 더 큰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 고장 난 부스는 안전은커녕 공포가 될 수 있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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