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군포] 대야동 주민 분노의 이유… 강호순 사건과 대야파출소

입력 2024-09-06 13:11 수정 2024-09-06 16:56

송부·대야파출소 중심지역관서제 시행

‘강호순 사건 발생지’ 상처 속 주민 반발

현재는 소강 상태 이르렀지만 불씨 남아

송부·대야파출소 중심지역관서제 시행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대야동 행정복지센터에 걸려있다. 2024.7.31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송부·대야파출소 중심지역관서제 시행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대야동 행정복지센터에 걸려있다. 2024.7.31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군포시에 매일 출근하면서 신기하게 느껴진 점은 작은 도시임에도 웬만한 건 다 있다는 점이다. 빼곡한 아파트 숲 한 쪽엔 산도, 호수도, 논밭도 있다. 대부분은 대야동에 위치한다. 산을 끼고 있어 군포시 전체 면적의 35%를 차지할 만큼 넓은 지역이다. 행정동 기준, 가장 작은 산본1동과 비교하면 무려 17배가 넓다. 그러나 인구는 1만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동네다.

이런 대야동의 여름은 어느 곳보다도 뜨거웠다. 파출소 때문이다. 지난 7월31일 대야동 곳곳엔 ‘대야파출소 폐쇄 이전 강력 반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난해 성남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경찰은 무차별 강력 범죄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도보 순찰 인력을 강화키로 했다. 그러나 소규모 관서에선 인력 확보가 쉽지 않은 만큼 2개 파출소를 통합 운영해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른바 ‘중심지역관서제’다. 경기남부 지역에선 9곳이 대상이다. 이 중 1곳이 송부·대야파출소다. 이에 지난 7월31일부터 대야파출소는 중심관서로 지정된 송부파출소가 관할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대야동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지역 주민단체 협의회가 반대 서명을 받았는데 닷새만에 지역 주민 3분의1 규모인 3천명 가까이가 동참할 정도였다. 한 주민단체 관계자는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서명한 건 그만큼 분노가 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를 냈다. 군포경찰서는 물론, 경기남부경찰청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앞서 중심지역관서제 대상인 다른 지역들도 어김없이 시행을 반대했다. 중심지역관서제가 실시된다고 해서 파출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혹여나 지역 치안 업무가 그 전보다 소홀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대야동 주민들의 반발이 두드러진 것은 유독 추웠던 15년 전 겨울의 그 일 때문이다.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아직도 못 잊어요. 어떻게 잊겠어요.”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화성시 매송면의 한 농로에서 진행된 군포여대생 실종사건 현장검증에서 강호순이 피해자의 손톱부위를 자르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경인일보DB

화성시 매송면의 한 농로에서 진행된 군포여대생 실종사건 현장검증에서 강호순이 피해자의 손톱부위를 자르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경인일보DB

“군포는 다른 지역에 비해선 사건, 사고가 많지 않아요. 대체로 조용하고 평화로워요. 그런데 (사건이) 났다 하면 커요. 강호순 사건 같은 것도 그렇고.”

군포지역을 처음 담당하게 됐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다. 강호순이 검거된 게 벌써 15년 전 일인데, 여전히 회자되는 것은 그 때의 일이 주민들의 뇌리에 그만큼 강하게 박혔다는 의미일 터다. 강호순이 2009년 검거되기 전 마지막으로 저지른 범죄는 2008년 12월 대야동 일대에서 발생했다. 당시 군포보건소 앞 버스정류장 앞에서 여대생을 납치한 후 살해한 것이다. 여대생 실종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안팎이 뒤숭숭했다.

이후 한달 여만에 강호순이 경찰에 붙잡힌 후, 그간의 행적이 드러나자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강호순의 생활 터전이 상당 기간 해당 지역과 멀지 않았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행정구역상 안산이었지만 대야동과 멀지 않은 반월저수지 일대에서 강씨가 개와 닭을 키우고 옥수수를 판매했던 일 등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2년여 전인 2006년 산본동에서 노래방 도우미를 살해한 일을 포함해 군포, 안양, 수원 등에서 잇따라 범행을 저지른 점도 함께 밝혀졌다.

강호순의 범행이 세상에 알려지기 1년 전엔 안양시 초등생 유괴·살인사건의 범인인 정성현이 군포에서 40대 여성을 숨지게 한 일이 알려지며, 지역 주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2009년 10월 대야파출소 개소식. /경인일보DB

2009년 10월 대야파출소 개소식. /경인일보DB

군포를 비롯한 경기 서남부가 마치 흉악 범죄의 온상지마냥 거론되자, 당시 경기경찰청은 2009년 안양, 안산, 화성, 수원, 군포 등 경기 서남부 지역에 파출소를 집중 신설했다. 이 때 문을 연 파출소 중 한 곳이 대야파출소다. 2009년 6월 임시 청사 형태로 운영돼오다 그해 10월 지금의 청사로 옮겨 정식 개소했다. 이렇게 생겨난 파출소가 15년 만에 도마 위에 오르면서, 오랜 기간 대야동에 거주해온 주민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한 모양새다.

“대야동이 사는 사람은 적은데 수리산이 있다 보니까 외지인들 방문이 많아요. 밤 10시면 버스도 끊기고. 강호순도 이웃들하고는 잘 지냈었다고 해요. 그런 사람인 줄 알았겠어요.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아직도 강호순 사건을 기억해요. 그러니까 더 불안해요. 단순히 사건, 사고가 몇 건 있었다는 지표만 보고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시행 한 달, 대야동은 지금

하은호 군포시장과 이학영 국회 부의장 등이 지난 8월8일 오후 김봉식 경기남부경찰청장에게 송부·대야파출소 중심지역관서제 시행 재검토를 촉구했다. 2024.8.8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하은호 군포시장과 이학영 국회 부의장 등이 지난 8월8일 오후 김봉식 경기남부경찰청장에게 송부·대야파출소 중심지역관서제 시행 재검토를 촉구했다. 2024.8.8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지난달 하은호 군포시장 등은 경기남부경찰청을 찾아 송부·대야파출소의 중심지역관서제 시행에 항의했다. 시행 대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렇다 할 의견 수렴이 없었던 데다, 파출소 통합 운영으로 대야동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당시 경기남부경찰청 측은 제도의 효용성을 따져보기도 전에 시행 며칠 만에 중단하기가 어렵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6개월이라도, 다만 몇 개월이라도 시행해본 후 주민들의 불안감이 여전히 크다면 재검토하겠다”는 계획도 부연했다.

시행 한 달이 지난 지금, 대야파출소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 중심관서가 아닌 파출소는 상주 인력을 최소한으로 두는 게 원칙이지만, 갑작스런 변화에 따른 주민들의 불안감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순찰 횟수나 사건 발생 건수 등에서도 제도 시행 전후 큰 특이점은 없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군포시에선 지역 자율방범대 활동을 강화했다. 당초 대야동자율방범대에서만 야간시간대 순찰에 나섰었는데, 최근엔 군포시 시민경찰연합자율방범대가 활동 반경을 넓혀 갈치저수지까지 순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앞서 하 시장은 경기남부경찰청장 면담 이후 “지역 자율방범대를 강화해 순찰을 요청하는 등 대야동 주민들의 심리적 치안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안을 시 차원에서 고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들불처럼 번졌던 주민들의 반발 움직임도 일단은 사그라든 상태다. 반대 서명 운동도 멈춰섰다. 그러나 아직 대야동 곳곳엔 반대 현수막이 붙어있다. 일각에선 국민청원 등을 준비하자는 목소리도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야동의 어느 겨울날 두려움, 또 어느 여름날 분노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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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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