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은의 혀', 생면부지 정은·은수
서로 돌본 것처럼 의존하는 삶
이제 우리 사회도 '의존'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 걷어내고 그곳에
선택의 상태·권리 채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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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은의 혀'(박지선 작, 윤혜숙 연출, 8월15일~9월8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는 상호돌봄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아프면 돌보는 관계'로 바뀌는 이야기이자 또한 의존하지 않는 삶의 불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시간은 정은과 은수의 만남에서 떠남까지이다. 상조도우미와 상주로 두 사람은 장례식장에서 만난다. '그렇게 텅 빈 눈은 처음이었습니다'. 정은의 눈에 은수가 들어온 순간이다. 어린 자식을 잃은 은수가 눈에 밟혀 정은은 퇴근하던 발길을 돌려 장례식장에 남는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정은과 은수는 일 년이 걸렸다. 그 동안 은수는 세 달 간격으로 303호 장례식장을 찾는다. 303호는 어린 아들의 장례를 치렀던 곳이 아니던가. 아무 연고도 없는 장례식장에 앉아 소주를 들이켜는 은수에게 정은이 조금씩 다가선 것이다.

은수의 시간은 속박의 시간이다. 303호 장례식장을 반복해서 찾는 기이한 은수의 행동은 자신을 벌하는 시간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슬픔은 우리가 꼭 묘사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의식을 가지고 우리가 자아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종종 방해하는 방식으로, 또 우리가 자율적이고 통제권을 갖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그 속박의 상태를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은수의 그 속박의 시간을 정은이 함께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은수가 찾은 303호 장례식장에 정은이 없다. 정은은 항암 치료 중이다. 이제 은수가 다가갈 차례이다.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스스로를 속박하고 있던 은수에게 문턱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멈출 것인가 아니면 나아갈 것인가. 은수는 정은의 곁에 서기로 한다. 그리고 '아프면 돌보는 관계'가 되기로 한다. 그만큼 친밀성이 쌓인 것이다.

"집에 가서 아플 거야. 집에 가자, 제발." 죽음의 문턱 앞에서 정은은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집으로 향한다. 정은은 안다. "우리는 어쩌자고 이렇게 아프고서야 알까. 우리는 약해 빠졌다는 걸." 스스로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집에 가서 아플 거라는 정은의 말이 더 빛난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삶을 어떻게 맞이할지를 자기 스스로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마지막 밤에 정은이 말한다. "나 가면 누구한테 말할래." 이것은 재촉이 아니다. 지금까지 묻어두었던 속내를 털어놓으라는 재촉이 아니다. 이것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둘이 함께한 시간이 경청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겠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정은이 눈을 감는 동안 은수가 이야기한다. 그 곁에서 은수가 '오래전 내 입 속에 가둔 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떠남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은수가 정은을 돌본 것일까. 간호도 하고 죽음을 지켰으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아마도 은수는 정은을 돌보는 은수를 돌본 것일지 모른다. 그게 더 진실에 가깝다. 눈을 감는 정은에게 어린 아들을 잃게 된 사연을 풀어내면서 은수는 자신을 조금은 용서했을지 모른다. 조금은 속박에서 벗어났을지 모른다. 자신의 실수와 무책임에 대한 자책을 조금은 줄였을지 모른다.

의존이 없는 자립이 있을까. "자립은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구마가야 신이치로)라는 말을 기억하자. 우리는 의존하는 것들로부터 빚지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이 자연이든 사람이든 그 갚을 길 없는 빚을 지는 것이다. 의존이 나약의 대명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의존이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의존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와 권리를 채우면 좋겠다.

연극 '은의 혀'는 인간은 모두 취약한 존재라고 말하는 작품이다. 정은과 은수가 서로를 돌본 것처럼 우리는 서로 의존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작품이다. 정은과 은수의 만남과 떠남의 모티프는 상호돌봄과 상호의존을 말하기 위한 장치이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