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월미도 폭격… 74년 아물지 않은 원주민 귀향문제

입력 2024-09-08 20:11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9-09 3면

市·해군, 아픔 보듬기 소극적 대처
유족, 거주 입증 어려움 대책 촉구

 

한인덕 월미도 귀향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제막식을 마치고 위령비 문구를 읽고 있다.
한인덕 월미도 귀향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제막식을 마치고 위령비 문구를 읽고 있다. /경인일보DB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 판세를 바꾼 승전의 역사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이면에는 미군의 월미도 폭격으로 원주민들이 희생되거나 터전을 잃은 비극이 있다.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 피해자들은 폭격으로 쫓겨난 원주민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 인천시가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시와 해군본부는 제74주년 인천상륙작전 기념주간 공식 행사가 열리는 11일 중구 월미공원에서 원주민 희생자 위령비 헌화에 나선다. 위령비 헌화는 인천상륙작전 승전을 기념하기 앞서 미군의 월미도 폭격으로 희생된 주민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인천시, 해군이 30여 개가 넘는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열고 승전 역사를 알리는 각종 관광 상품 등을 선보인 것과 비교해 월미도 주민의 아픔을 보듬는 데는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 유족들로 구성된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는 정부와 인천시에 월미도 귀향대책 마련을 지속해서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살았던 월미공원 일대에 다시 돌아가서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입장이지만, 증빙 자료가 전쟁으로 소실돼 관련 사실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월미도 미군 폭격으로 할아버지와 누나를 잃은 우순길(66)씨는 "국방부는 희생자 지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인천시는 소관 업무가 아니라고 하는데 지역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며 "인천상륙작전 뒤에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른다. 유가족들은 남아있는 기간 정부를 상대로 귀향대책 마련을 촉구하면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월미도 원주민들은 인천상륙작전 닷새 전인 1950년 9월10일 미군이 작전상 전략지였던 월미도를 폭격하면서 희생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쫓겨났다. 당시 희생자 규모는 100여명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이 같은 사실을 규명하면서 한국, 미국 정부가 희생자에게 적절한 조처를 하도록 권고했으나 아직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유가족들은 정부, 미국 정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과거 월미도에 살았다는 사실을 규명할 근거가 부족해 패소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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