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인 긴 폭염으로 한여름 같은 가을이 왔다. 그래도 가을은 가장 독서 친화적인 계절이다. 가을에 읽어야 할 소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가들이 첫손에 꼽는 소설들이 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체코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1914~1997)의 소설이다. 모순형용(oxymoron)에 가깝지만 작품 내용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소설은 폐지 압축공인 주인공 한탸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130쪽 분량의 짧은 작품이다. 한탸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전쟁과 폭력으로 가득한 비정상적 세계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그는 프로이센 왕실 도서관의 책을 파쇄했고, 전쟁 후에는 나치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에 반하는 금서들을 파쇄했다. 그는 책들을 파쇄하면서 엄청난 독서로 큰 교양을 쌓는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현대화한 작업 방식으로 인해 직장에서 밀려나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책을 파쇄하는 시끄러운 일을 하면서도 세상과 거리를 두는 고독을 즐기던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세계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책들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압축기 속으로 밀어 넣는다.
W.G. 제발트(1944∼2001)는 독일 출신 영국 작가다. '토성의 고리'는 다크투어리즘 형식의 작품으로 자연사적(自然死的) 글쓰기가 돋보인다. 토성의 위성들은 기조력으로 모두 파괴되고 남은 파편들이다. 토성의 고리는 얼음 결정체와 각종 입자들로 이뤄져 있는데,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다 없어진다는 무상의 철학을 보여준다. 한때 번성했던 대도시 로우스토프트는 대공황 이후 쇠퇴한 도시가 됐다. 그런가 하면 도서관에서 발견한 화보집에서 썩어가는 시신들과 침몰하는 전함 등 1차 세계대전의 상흔들을 목격한다. 역사적 현장인 워털루에서 역사의 어두운 이면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 외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독자를 즐거운 혼란에 빠뜨리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든지 실제의 일상어로만 작품을 썼던 단편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등은 소설가들에게는 소설교과서 같은 작품들이다. 모처럼 찾아오는 추석 연휴 한숨 나오는 의료대란, 검찰의 정치 수사 논란 등 세상사에서 잠시 떨어져 이런 걸작들을 읽는 고요한 사색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경인일보 (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