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구자의 집' 산행에 첫 참여
선배들의 간식과 다정함 나를 살려
나이가 들면 다들 산에 오르는것은
새롭게 갖춰야할 권위에 대한 사례
함께하는 등산에 있기 때문 아닐까
지난해 7월부터 연구자 단체인 '연구자의 집' 산행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동네 뒷산을 오르는데도 에베레스트 등산 차림'이란 한국의 K 중년 등산복 대신 운동복 바지에 면티를 입고 모자·스틱 없이, 선글라스 하나 달랑 쓰고 펄펄 끓는 7월의 한여름, 그늘 한 점 없는 바윗길 험준한 산을 올랐다. 얼마 가지 못해 동행한 분들이 가지고 온 손수건, 스틱, 얼음물이 차례로 내게 왔다. 이글거리는 태양에 타던 시커먼 머리카락을 덮기라도 할 손수건이 없었다면, 끊임없이 올라도 끝나지 않던 바윗길에 의지할 스틱이 없었다면, 미지근한 물과는 견줄 수 없는 차가운 한 모금의 얼음물이 없었더라면 결단코 내 발로 하산하진 못했다. 한여름의 바위산을 오르면서 편의점에서 산 성의 없는 '원플러스 원' 500리터 생수 2병은 연민을 넘어 무모함에 대한 실소를 자아내지 않았을까 싶은데도 선생님들은 우매함을 탓하는 대신 오장육부까지 벌겋게 익었을 내게 얼음물을 건넸다. 보랭백에 넣어온 여러줄의 김밥, 이틀 전부터 가지런하게 썰어 꽁꽁 얼려 온 수박, 수분이 담뿍 담긴 야채, 순간적으로 힘을 끌어낸다는 식초 원액까지. 선생님들의 무거운 배낭에서 나온 간식과 다정함이 그날의 나를 살렸다.
다시는 못 가겠다 싶던 산행을 해가 바뀌어서도 이어갔다. 그러는 사이 기본적 등산용품도 하나씩 장만했으나, 3월의 산이 그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눈 덮여 꽁꽁 언 산을 아이젠 없이 오르기도 했다. 선생님의 왼쪽 아이젠을 빌려 신고 한발씩 나란히 미끄러지던 날은 혹독한 추위와 바람에, 내 안전을 위해 반쪽의 안전을 선뜻 내준 배려에 대한 미안함으로 "저는 여기까지"라며 "되돌아가겠다"는 말을 결국 꺼냈다. 할 수 있다며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오르며 내주던 곁들이 모여, 내려 올 때는 결국 내 두 발 모두에 채워져 있던 다정한 아이젠들이 모여, 할 수 없던 수많은 이유들을 뒤로 하고, 선생님들과 함께 오른 산행 모두를 나는 완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만에 새내기 K 중년 등산인이 됐다.
벌써 두 번째 학과장직을 수행 중이다. 늘 을로만 살다 관리직을 수행하려니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을로 20년을 살면서 받아온 서러움이 있으니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지금까지 만나온 몇몇 당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도 일견 당연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친절함이나 선의, 사소한 정의감이나 열정만으로 수행되지는 않았다. 다정함과 함께 권위도 필요했으나 내가 훈련하고 연습해야 할, 그러니까 잘하지 못하는 것이 '적절한 권위를 부리는 것'이었음을 사소하고 고통스러운 실패들로 알게 됐다. 어떤 일의 결과가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공동체의 노력을 폄훼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일의 무게가 자신의 어깨에만 짊어져 있다는 끈질긴 오해로 인한 억울함을 토로하는, 세상이 선과 악이란 단순한 이분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란 누군가의 확신 앞에서 나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거친 인식이 어떤 시점의 나와 다르지 않았겠다는 뒤늦은 인식이, 그런 억울함과 확신에 맞설 의지를 꺾었을 것이다.
누군가 물었다. "어려울 수도 있는 선생님들이 계신 산행에 어찌 그리 꾸준할 수 있어?" 동요에만 나왔던 옹달샘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눈, 솔잎을 따아 씹으면 마치 껌처럼 입안이 화해질 수 있다는 낯선 경험, 옛 가요나 가곡을 함께 부르며 걷는 오솔길의 충만함이나 낭만이 하나의 이유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혼자서는 오를 수 없는 산을 질책하거나 깎아내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 오르는, 내게는 결핍되었던 모자, 스틱, 차가운 얼음물을 당연하게 나누었던 관계의 경험, 그러니까 '선배의 다정함'이 새로운 K 중년 등산인을 탄생케 하는 힘이 됐을 것이다.
중년이 되면 큰 예외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새롭게 갖춰야 할 권위에 대한 구체적 사례가 함께 오르는 산행 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정함 속에 숨겨놓은 무게가 우리가 이제부터 부려야 할 권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이 K 중년 등산인을 끊임없이 양산하는지도 모르겠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선배들의 간식과 다정함 나를 살려
나이가 들면 다들 산에 오르는것은
새롭게 갖춰야할 권위에 대한 사례
함께하는 등산에 있기 때문 아닐까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
다시는 못 가겠다 싶던 산행을 해가 바뀌어서도 이어갔다. 그러는 사이 기본적 등산용품도 하나씩 장만했으나, 3월의 산이 그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눈 덮여 꽁꽁 언 산을 아이젠 없이 오르기도 했다. 선생님의 왼쪽 아이젠을 빌려 신고 한발씩 나란히 미끄러지던 날은 혹독한 추위와 바람에, 내 안전을 위해 반쪽의 안전을 선뜻 내준 배려에 대한 미안함으로 "저는 여기까지"라며 "되돌아가겠다"는 말을 결국 꺼냈다. 할 수 있다며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오르며 내주던 곁들이 모여, 내려 올 때는 결국 내 두 발 모두에 채워져 있던 다정한 아이젠들이 모여, 할 수 없던 수많은 이유들을 뒤로 하고, 선생님들과 함께 오른 산행 모두를 나는 완주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만에 새내기 K 중년 등산인이 됐다.
벌써 두 번째 학과장직을 수행 중이다. 늘 을로만 살다 관리직을 수행하려니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을로 20년을 살면서 받아온 서러움이 있으니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지금까지 만나온 몇몇 당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도 일견 당연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친절함이나 선의, 사소한 정의감이나 열정만으로 수행되지는 않았다. 다정함과 함께 권위도 필요했으나 내가 훈련하고 연습해야 할, 그러니까 잘하지 못하는 것이 '적절한 권위를 부리는 것'이었음을 사소하고 고통스러운 실패들로 알게 됐다. 어떤 일의 결과가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공동체의 노력을 폄훼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일의 무게가 자신의 어깨에만 짊어져 있다는 끈질긴 오해로 인한 억울함을 토로하는, 세상이 선과 악이란 단순한 이분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란 누군가의 확신 앞에서 나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거친 인식이 어떤 시점의 나와 다르지 않았겠다는 뒤늦은 인식이, 그런 억울함과 확신에 맞설 의지를 꺾었을 것이다.
누군가 물었다. "어려울 수도 있는 선생님들이 계신 산행에 어찌 그리 꾸준할 수 있어?" 동요에만 나왔던 옹달샘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눈, 솔잎을 따아 씹으면 마치 껌처럼 입안이 화해질 수 있다는 낯선 경험, 옛 가요나 가곡을 함께 부르며 걷는 오솔길의 충만함이나 낭만이 하나의 이유 아니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혼자서는 오를 수 없는 산을 질책하거나 깎아내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 오르는, 내게는 결핍되었던 모자, 스틱, 차가운 얼음물을 당연하게 나누었던 관계의 경험, 그러니까 '선배의 다정함'이 새로운 K 중년 등산인을 탄생케 하는 힘이 됐을 것이다.
중년이 되면 큰 예외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새롭게 갖춰야 할 권위에 대한 구체적 사례가 함께 오르는 산행 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정함 속에 숨겨놓은 무게가 우리가 이제부터 부려야 할 권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이 K 중년 등산인을 끊임없이 양산하는지도 모르겠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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