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스파이 천국의 간첩법

입력 2024-09-11 19:50 수정 2024-09-11 19:51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9-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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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문신 문익점 덕분에 신생 조선의 백성은 방한(防寒)혁명을 누렸다. 문익점의 목화재배법과 물레제작 기술 덕분에 겨울에 따뜻한 옷을 입게 된 것이다. 조선왕조는 망국의 신하에게 시호를 내렸고, 현대의 후손들은 '붓두껍 목화씨' 전설에 착안해 '역사적 산업스파이'로 추앙한다. 산업혁명의 발명품 수력방적기는 영국의 해외유출금지 품목이었다. 영국인 새무얼 슬레이터가 방적기 제조기술을 암기해 미국에 건너가 방적 공장을 지었다. 영국은 반역자라며 이를 갈았지만 미국은 미국 산업혁명의 아버지라 칭송했다.

최무선의 화약과 화포는 문익점의 목화와 물레에 필적하는 발명품이다. 화약은 원나라의 금수(禁輸) 품목이었다. 최무선은 원나라의 문헌과 기술자에게 얻은 정보로 화약을 제조하고 화포를 제작해 왜구를 소탕했다. 원나라 군사 정보를 수집한 결과이니 문익점 버금가는 '역사적 스파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조선은 화포의 나라가 됐다.

조선이 일본의 조총 제작 기술을 가져왔다면 임진왜란은 부산포에서 끝났을지 모른다. 소련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심어 둔 스파이 클라우스 푹스가 빼내 준 핵개발 기술로 1949년에 두번 째 핵무장국이 됐다. 소련의 핵무장이 지체됐다면 유일한 핵무장국 미국을 의식한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했을까 의문이다. 1950년 6월 25일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스파이의 실존적 의미는 상대적이다. 적에겐 간첩이지만 우리편이면 영웅이다. 적의 스파이는 발본색원하고 우리 정보망은 사수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거꾸로다. 방산기업의 잠수함 설계도면이 대만에 통째로 넘어가고, 정보사령부 요원은 동료인 '블랙요원' 명단을 중국에 팔아먹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을 훔쳐 중국 지방정부와 반도체 기업을 세운 삼성전자 전직 임원이 검찰에 송치됐다. 삼성전자가 4조원을 투입해 개발한 공정이다. 올 한해 발생한 일이다. 외국인 스파이 보다 검은머리 외국 스파이가 더 치명적이다.

물러터진 '간첩법(형법 98조)'이 도마에 올랐다. 국정원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간첩의 정의와 행위를 확대한 법 개정안 발의를 예고했다. 북한 간첩뿐 아니라 외국 간첩과 산업스파이도 간첩죄로 무겁게 처벌하겠다는 취지다. 간첩법 개정을 주도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반긴다. 스파이 천국 대한민국이다. 안보가 흔들리고 국부가 유출된다. 여야가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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