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할머니 나무' 만날때까지… '볼음도 약속' 위해 갯벌·저어새 지킬것

입력 2024-09-12 20:25 수정 2024-09-12 21:14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9-13 4면

800년전 연안군 부부 은행나무

'할아버지나무' 폭우로 떠내려와
"부모님 고향 이야기 듣고 자라"

육지 쓰레기 치워도 계속 밀려와
천연기념물 서식 생태계 위협
자연 보호·평화 노력 머리 맞대


11일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의 북쪽 해변에서 오형단 볼음도생태계마을영농법인 대표가 바다 너머로 보이는 황해남도 연안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9.11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11일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의 북쪽 해변에서 오형단 볼음도생태계마을영농법인 대표가 바다 너머로 보이는 황해남도 연안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9.11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 뱃길로 1시간 거리인 그 작은 섬마을에서 아주 특별한 '약속'이 이뤄졌다. 이름하여 '볼음도 약속'이다.



지난 11일 오전 8시30분께 강화군 화도면 선수선착장에서 볼음도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다. 주변 섬인 아차도, 주문도 등과 달리 볼음도로 가려는 승객은 방문하려는 장소, 본인은 물론 만나려는 사람의 인적 사항을 적어 내야 했다. 볼음도는 민간인통제구역이기 때문이다. 볼음도 북쪽 바다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한강하구 중립수역으로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볼음도 북쪽 해변에는 높이가 25m에 달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800년 전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는 부부 은행나무 중 하나가 폭우로 떠내려온 것을 건져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나무를 '할아버지' 나무라고 부르는 섬 주민들은 어서 통일이 되어 연안군에 홀로 남은 '할머니' 나무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이날 취재를 도운 오형단(66) 볼음도생태계마을영농법인 대표는 "볼음도에는 6·25전쟁 피란민이 많이 정착해 살았고,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 주민들은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을 건너 황해남도 연안군 주민들과 조개나 생선 등을 사고팔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릴 때부터 북녘 고향을 그리워하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누구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볼음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2024.9.11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볼음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2024.9.11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볼음도에는 할아버지 은행나무를 포함해 세 가지 천연기념물이 있다. 볼음도 사방에 펼쳐진 드넓은 '갯벌'과 이곳에서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철새이자 인천의 깃대종(지역 생태계를 대표하는 생물종) '저어새'다.

 

볼음도 남쪽 영뜰해변은 스티로폼과 페트병 등 한강을 따라 떠내려온 육지 쓰레기가 긴 띠를 이뤘다. 주민들이 수시로 쓰레기를 치우고 있지만 밀물 때마다 쓰레기는 계속 밀려온다고 한다. 해안 침식이 심해져 영뜰해변 앞 방풍림이 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지기도 했다.

 

11일 찾은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의 영뜰해변에 스티로폼, 페트병 등 해양쓰레기가 밀려와 쌓여 있다. 2024.9.11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11일 찾은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의 영뜰해변에 스티로폼, 페트병 등 해양쓰레기가 밀려와 쌓여 있다. 2024.9.11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주민들은 갯벌 위를 덮고 있던 모래가 쓸려가면서 햇볕을 받은 갯벌이 단단해졌다고 했다. 갯벌이 굳으면서 조개들이 진흙 안으로 파고들지 못해 말라죽는 경우도 늘었다고 한다.

주민 장모(61)씨는 "볼음도를 찾는 관광객 대부분은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체험활동을 가장 좋아하는데, 요즘은 갯벌에 다녀와 크게 실망하는 이가 많아졌다"며 "잘 잡히던 밴댕이가 올여름엔 작년보다 절반은 더 줄었다"고 말했다.

볼음도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 농법으로 벼농사를 지었고, 집집마다 지붕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했다. 또 주민들이 생태계마을영농법인을 꾸려 만든 게스트하우스 '저어새 둥지'는 전기 이용량의 70%가량을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과 지열로 충당한다.

지난 5일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의 게스트하우스 '저어새 둥지'에서 볼음도생태계마을영농법인,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등이 '한강하구 볼음도의 생명평화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업무협약'(볼음도 약속)을 맺었다. 2024.9.5 /기후·생명정책연구원 제공
지난 5일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의 게스트하우스 '저어새 둥지'에서 볼음도생태계마을영농법인,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등이 '한강하구 볼음도의 생명평화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업무협약'(볼음도 약속)을 맺었다. 2024.9.5 /기후·생명정책연구원 제공

최근 인천 시민·환경단체들이 풍광이 아름답고 평화를 염원하는 섬, 볼음도를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일 주민들과 '볼음도 약속'이란 협약을 맺고, 갯벌·저어새 등 천연기념물 보전과 한강하구 평화를 위한 노력 등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볼음도생태계마을영농법인, 국제와이즈멘 한국인천지구, 기후·생명정책연구원,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인천YMCA 등이 동참했다.

장정구 기후·생명정책연구원 대표는 "볼음도는 소중한 자연환경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분단의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라며 "볼음도의 소중한 가치를 많은 이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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