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여야 떠나 업적 주목
사람·이념에 대한 균형있는 태도
국가와 세계 전체 아우르는 안목
주위 사람과 함께 나누는 생활인
현재의 정치적 문제 해결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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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올해는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김대중만큼 논란이 많고 극단적인 평가를 받아온 정치인이 없지만, 최근에는 대통령이자 정치인으로서 그의 면모와 업적에 여야와 좌우를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특히 현직 대통령이나 정치권의 무능과 문제점을 지적할 때 참고해야 할 모범으로 제시되곤 한다.

평생 민주화와 남북평화를 위해 헌신해 온 김대중의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은 독보적이다. IMF 위기를 조기 극복하는 리더십을 발휘했고,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건강보험 도입·의약분업 실시·국민연금 보편화·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으로 생산적 복지국가의 토대를 다졌다. 또한 IT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정보통신 산업을 육성했고, 문화예술 분야에 적극 투자해서 BTS, 봉준호 등을 보유한 문화강국이 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김대중 이후 5명의 대통령이 나왔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과 국가의 위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뚜렷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와 이후의 정치인들 사이에 아득한 격차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물론 국내외의 정치적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 큰 요인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정치인, 더 나가서 한 인간으로서 그릇의 크기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다 나은 정치를 위해서 김대중의 삶과 정신을 계승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

먼저, 사람과 이념에 대한 균형 있는 태도다. 그는 자신과의 친소관계를 떠나 사람들을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했다. 자신을 핍박했던 박정희든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장면이든 그들의 공과와 장단점에 대해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우유부단하고 위기 앞에서 나약했던 장면이나 영속적인 권력을 탐하다가 비운에 간 박정희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둘째, 국가와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이다. 지금까지 김대중만큼 세계 문명의 흐름과 국제정세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고 대응하는 정치인은 보지 못했다. 위에서 언급한 김대중의 업적들도 이런 시공간을 넘나드는 폭넓은 시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가 전체는 차치하고 자기 파벌, 자기 자신의 안위에만 주로 관심이 있는 요즘 정치인들이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셋째,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다. 반대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돼서도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포용의 태도는 소수파로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기 이전에 오래전부터 삶에 체화되어 있었다. 최근 김대중도서관에서 발간한 '김대중 육성회고록'에는 자신과 친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해를 가하거나 사이가 멀었던 사람들과의 교류와 그들에게 품었던 감정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서운하거나 미운 감정을 보복으로 해소하려고 하지 않고 가능하면 화해하고 협력해서 일이 성사되게 노력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생활세계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웃고 웃을 수 있는 인간 김대중의 모습이다. '김대중 육성회고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도 이것이다. 젊은 시절 사업을 할 때뿐 아니라 정치 거물이 된 이후에도 한결같이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민감하게 느끼고 관찰하는 생활인 김대중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큰 수확이다. 수십년 지난 오랜 과거의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해 그 감정까지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그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김대중의 큰 업적들도 주위 사람들과 같이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생활인 김대중이 아니었으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김대중 정신은 많은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국민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는 우리 정치권의 무능도, 도의회와 원만한 관계를 원하는 경기도의 고민도 김대중 정신을 제대로 알고 실천한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