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 배수지에 터전… 이달 1주년 맞아
국내외 1만8천여권 열람·수장고도 있어
북 토크·음악회 등 홍보… K 플랫폼 정진
1991년 산본신도시 개발 후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당시 안양 포일정수장에서 끌어온 물을 보관하던 배수지가 있던 곳이 지금의 그림책꿈마루 자리다. 이후 2년만인 1993년 군포시에 새 정수장이 만들어지면서 배수지 운영이 중단됐고 오랜 기간 방치됐다. 그러다 2017년 NEXT 경기창조오디션에서 배수지를 그림책 관련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안이 대상을 받아, 지금의 그림책꿈마루가 만들어지게 됐다. 이 때문에 배수지의 흔적이 그림책꿈마루 곳곳에 남아있다. 물이 각 가정으로 나가는 배관 출구인 집수정이 보존돼있고 배수지를 받치던 기둥도 로비 기둥으로 재활용했다.
그림책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 만큼 준비도 열심히 했다. 그림책 작가들에게서 각종 자료를 기증받은 것은 물론, 주요 작가회 회원들과 경기 중부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작가들의 구술 채록 영상도 제작했다. 한국 창작 그림책의 아카이브를 구축, 운영하고 콘텐츠 개발을 위한 세미나도 사전에 다수 진행했다. 이를 토대로 국내·외 1만8천여권의 그림책을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 한국 그림책 역사를 담은 기록관, 어디에서도 만나기 힘든 귀중한 그림책 자료들을 담은 아카이브실 등을 두루 갖췄다. 수장고가 있는 점도 그림책꿈마루의 차별점이다.
그림책꿈마루의 관장을 맡게 되면서 그림책의 매력에 더욱 푹 빠지게 됐다. 흔히 그림책은 아이들이 읽는 책 정도로 여기지만, 감동과 여운은 일반 책 못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10~20분 남짓 얇은 그림책 한 권을 봤을 때의 감동과 여운이 1주일 가까이 두꺼운 책 한 권을 읽었을 때의 느낄 수 있는 것에 못지 않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매우 심오한 그림책들도 적지 않다.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즐기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게 그림책의 매력이다. 이는 그림책이 글과 그림, 어느 것 하나 빠져선 안 될 복합 예술의 집약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그림책의 매력을 더 많이 알리고 싶었다. 그림책꿈마루는 그림책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한 권 쯤 읽게 만드는, 그런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1년간은 그림책꿈마루를 일반 시민들에게 홍보하는데 매진해왔다. 카페의 조망이 좋아서, 재미있는 강연과 공연을 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에 좋아서. 어떤 이유에서든 그림책꿈마루를 찾는 이들이 늘어야 그림책의 매력도 더 많이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명 그림책 작가들을 초청해 북 토크를 진행하기도 하고 가을 낭만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발달, 심리 등을 주제로 한 강연도 열어 호평을 받았다. 지난 6월엔 체험형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전시 행사인 '오르: 빛 워터 파고다'가 그림책꿈마루에서 열려 관심을 모았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 1년 동안 모두 3만8천여 명이 그림책꿈마루를 찾았다. 하루 평균 327명이 온 것이다.
1주년을 맞아 선보인 전시도 특별하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대표작인 '인어공주'를 테마로 했다. 인어공주를 다룬 국내·외 도서를 읽고 인어공주 이야기로 만든 인터랙티브 미디어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일본의 조각 작가 세키쿠치 코타로의 'Big Mermaid'도 로비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7~8일엔 세키쿠치 작가가 직접 진행한 '페이퍼 판타지' 교육이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 1년간 그림책꿈마루를 사랑해준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림책꿈마루가 군포시를 상징하는 명소가 되고, 나아가 세계적인 K-그림책 플랫폼으로 성장토록 하기 위해 정진하려 한다. 그리고 그림책꿈마루는 이미 그런 잠재력을 충분히 갖춘 공간이다. 그림책꿈마루가 사랑받고, 이런 그림책꿈마루를 중심으로 뻗어나간 한국의 그림책이 전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날을 기대해본다. 군포시에는 그림책꿈마루가 있다. 이번 주말, 그림책꿈마루에서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안병훈 그림책꿈마루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