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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일면식도 없는 회장님께 고언을 드리는 심경, 착잡합니다." 필자가 문화부장 때 정몽규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 회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의 첫 문장이다.(데스크칼럼 '현대산업개발 정몽규회장 앞' 2015년 8월 6일자 13면) 경인일보는 2014년 11월부터 현산이 수원시에 기부채납할 미술관의 가칭인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아이파크'를 빼야한다는 취재 및 기획보도를 연재했다.

현산의 시립미술관 기부채납은 8천세대 가까운 초대형 아파트단지 개발사업의 대가였다. 시립미술관 부지는 시민혈세 500억원이 투입된 시유지였다. 기부채납된 미술관의 운영에도 혈세가 투입된다. 미술관 명칭에 아이파크가 들어가고, 1층에 '포니정홀'이 상주할 이유가 없었다.

현산은 집요했고 수원시는 현산을 두둔했다. 둘 다 기부채납을 기부라고 강변했다. 공개서한 칼럼에서 "회장님의 위치가 너무 높아 이 문제가 실무진 수준에서 허술하게 다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며 "나쁜 기부의 대표 사례로 기억되고 회자될 수 있는 사안"이니 가벼이 여기지 말라 경고했다.

답장은 없었고, 결국 2015년 10월 8일 현산과 수원시의 뜻대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개관했다. 햇수로 7년 만인 2022년, 수원시의회가 조례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을 '수원시립미술관'으로 개칭했다. 그해 1월 시공 중인 광주 화정아이파크가 무너졌다. 붕괴된 부실 아파트 브랜드를 시립미술관 명칭에 남겨둘 명분이 없었다. 정 회장이 고집한 '아이파크'를 정 회장 스스로 지운 셈이다.

'아이파크' 명칭은 사라졌지만, 미술관 1층 포니정홀은 그대로다. 정 회장의 부친 고 정세영 회장의 포니신화를 기린다. 포니신화는 현대자동차의 유산이고, 현대차와 미술관은 인연이 없다. 순전히 정 회장의 부친 '포니정'을 위한 사적 공간에 가깝다. 포니정의 얼굴 동판이 수원의 상징인 정조의 영정과 나란히 걸려있는 '포니정홀'엔 문화적 맥락이 없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24일 국회에 불려나가 홍명보 국가대표 감독 선임과 관련해 혹독한 추궁을 받았다. 클린스만의 먹튀와 홍 감독 선발 이후 붉은악마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았다. 수원시립미술관에 자신의 기업과 선친의 흔적을 새겼지만, 명예를 지킬 역량은 의심스럽다. 아이파크 명칭이 먼저 사라졌다. 미술관 1층 '포니정홀'도 정 회장의 평판과 분리될 수 없을 테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