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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기형도와 심야극장

입력 2024-10-10 20:10
지면 아이콘 지면 2024-10-11 14면
누나 세상 떠난 무렵 시 쓰기 시작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29세 생일 엿새 앞두고 숨진채 발견
처음이자 마지막 '입 속의 검은 잎'
한국 시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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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기형도(1960~1989)는 1960년 3월13일 경기도 옹진군 안평리 392번지에서 태어났다. 3남4녀 중 막내였다. 부친 기우민의 고향은 연평도에서 건너다보이는 황해도 벽성군이었으나 6·25를 겪으며 당시 황해도 피란민의 주된 이동 경로인 연평도로 건너왔다. 면사무소에서 근무했던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면사무소에 근무하며 정착했다.

1964년 일가족이 연평을 떠나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 현 광명시 소하동 701-6으로 이사했다.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과 수재민들의 정착지가 되기도 하는 도시 배후의 근교 농업이 주를 이루는 농촌이었다. 1969년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져 전답을 팔아 약값으로 쓰고 모친이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 때 기형도 나이 열살이었으니 가혹한 시절이었다. 1973년 신림중학교에 입학했다. 3년 내내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1975년 누나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깊은 슬픔을 갖게 되었으며 그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9년 2월 중앙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3월에는 연세대학교 정법대 정법계열에 입학했다. 교내 문학 서클에 가입해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했다.

그해 12월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 시상하는 '박영준문학상'에 시 '영하의 바람'으로 가작에 입선되었다. 이어서 1980년 3월 정법계열에서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했다. '80년의 봄'이 시작되어 철야농성과 교내 시위에 가담하고 교내지에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했다가 형사가 학교로 찾아오는 등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81년 3월 병역관계로 휴학하고 부산과 대구 등지로 여행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연세대학교 교내 문학 서클인 '연세문학회'와 안양의 문학동인 '수리'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연세문예춘추'에서 제정하고 시상하는 '박영준문학상'과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했다.



기형도는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나왔다. 당시 민중시나 노동시 등 투쟁적이고 정치적인 시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그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시세계를 다지고 있었다. 2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시작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전문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늙은 사람'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밤눈' '오래된 서적' '어느 푸른 저녁' 등을 발표했다. 1984년 중앙일보사에 입사해 1986년 문화부로 자리를 옮겼으며 '위험한 가계 1969' '조치원' '바람은 그대 쪽으로' '포도밭 묘지 1 2' '숲으로 된 성벽' 등을 발표했다. 1987년 여름에 유럽 여행을 했다. 1988년에는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겼다. '진눈깨비' '죽은 구름' '추억에 대한 경멸'등을 발표했다.

1989년 3월7일 새벽, 그는 시집 출간을 준비하던 중 서울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기형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다.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벌어진 안타깝고 슬픈 사건이었다. 그해 5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는 살아 있을 동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일부 비평가들 사이에서 내면적이고 비의적이며 우화적인 독특한 시세계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되었을 때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졌으며 그 후 그의 시는 한국 시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많은 후학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기형도의 현대성은 그의 시에서 묘사되는 도시와 긴밀한 관계에 놓인다. 그의 도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이어서 퇴근길의 수많은 인파가 파편화된 채 얼굴 모를 군중이 된다.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 한다'.(입속의 검은 잎)

/김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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