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프롬 인천

[아임 프롬 인천·(36)] “인천소설 ‘난쏘공’ 읽고 소설가 되기로 결심” 소설가 최정화

입력 2024-10-16 16:08 수정 2024-10-16 21:12
지난달 26일 인천 중구 인성여고에서 만난 소설가 최정화(45). 2024.9.26 /조재현기자jhc@kyeongin.com

지난달 26일 인천 중구 인성여고에서 만난 소설가 최정화(45). 2024.9.26 /조재현기자jhc@kyeongin.com

소설가, 기후칼럼 기고자, 제로웨이스트 실천가, 여성주의자, 요가 수련자, 고양이 집사….

소설가 최정화(45)를 정의하는 단어들이다. 그는 등단(팜비치·2012) 이후 10여년간 노동자(없는 사람·2016), 여성(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2021), 제로웨이스트(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2022), 기후위기(날씨통제사·2022, 봇로스 리포트·2023) 등 다양한 주제로 소설과 에세이를 썼다.

최정화의 작품을 들여다 보면 그가 어떤 도시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궁금해진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소설가의 꿈을 심어 준 것은 인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다. 소설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는 그에게 여전히 인천은 자신의 학창시절이 살아있는 애정 어린 공간이자, 영감을 주는 도시로 남아 있다.

■소설의 힘을 깨닫게 한 책 한 권, ‘난쏘공’

1997년 인천 중구 인성여고 도서관에서 당시 고3이었던 최정화의 꿈이 시작됐다.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첫 페이지를 연 그는 소설에 푹 빠졌다. 날카로운 시각에서 사회를 풍자한 이 소설을 계기로 최정화는 자신이 보지 못했던 사회적 모순과 사각지대를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때 소설이 가진 힘을 느꼈다.

최정화는 고등학생 시절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2024.9.26 /조재현기자jhc@kyeongin.com

최정화는 고등학생 시절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2024.9.26 /조재현기자jhc@kyeongin.com

“보통은 중학교 때 사춘기가 오잖아요. 저는 작가 데뷔도 그렇고 뭐든지 다른 사람들보다 늦은 편인데, 고3 때 사춘기가 찾아왔어요. 모범생이었던 제가 학교 수업에도 심드렁해지면서 세상에 대한 이런 저런 철학적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저는 세상을 긍정적으로만 봤었는데 막상 소설을 펼쳐보니 그렇지 않은 세상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어요. 난쏘공은 학생으로서는 상상하고 접하기 어려웠던 노동자와 사용자의 계급적 관점에서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한번 세상을 보는 게 어떨까’ 하는 도전을 심어줬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최정화가 ‘난쏘공’을 읽고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남다르다. 난쏘공은 대표적 ‘인천소설’이기 때문이다.

난쏘공의 중후반 주요 무대인 도시 ‘은강’은 인천 동구 만석동 공장지대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소설 속 장소의 배경이 된 동일방직, 일진전기(옛 도쿄시바우라), 현대두산인프라코어(옛 조선기계제작소) 등은 아직 동구에 남아 있다.

조세희 선생의 49재였던 지난해 2월 시민들이 난쏘공과 인천을 적극적으로 연결 짓자는 움직임으로 동구 일대에서 추모 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답사를 주도한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대표는 “1970년대 인천의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작품에 담은 조세희 작가가 세상을 떠났는데 인천에선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게 슬펐다”며 “시민들이 모여 소설의 배경이 된 동구 만석동 일대를 도는 추모 답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오는 12월25일 조세희 선생 2주기 추모 답사를 앞두고 있다.

■이과 모범생 소설가를 꿈꾸다

최정화는 어릴 적 내성적인 아이였다. 전업주부 어머니, 두살 터울 언니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충청도 출신 아버지와 서울 출신 어머니는 주안역 근처 삼양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그림, 글쓰기 대회 등에서 입상하며 예술가 기질을 보인 것은 언니였다. 최정화는 잠이 들기 전 이야기꾼 언니가 창작해 준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곤했다.

어린시절 언니와 최정화(왼쪽) /최정화 제공

어린시절 언니와 최정화(왼쪽) /최정화 제공

인천석암초, 제물포여중을 다니던 최정화는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모든 과목에 ‘수’를 받았고 학급 부반장, 총무부장을 맡아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선생님께는 예쁨을 받는 아이였다.

최정화는 어릴 적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즐겨했던 ‘전형적인 작가 타입’의 학창시절을 보내진 않았다고 말한다. 그가 책과 글쓰기에 관심이 생긴 것은 인성여고에 입학한 후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를 담당했던 이한수 교사는 국어 시간에 교과서를 벗어나 철학, 문학서적들을 읽어볼 수 있게끔 아이들에게 필독서를 정해줬다. 책을 읽은 후에는 독후감을 써오라고 시켰는데 선생님은 좋은 글을 뽑아 학생들과 공유했다.

“당시 친구가 쓴 글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보통 국어 시간에 모범적으로 뽑히는 감상문들은 내용 파악을 잘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적합한 감정을 서술한 글이었는데, 선생님께서 뽑은 글은 책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버지가 안 계신 한 친구가 엄마가 한밤중에 갑자기 너무 아프셔서 문이 닫힌 약국에 가서 셔터를 두드렸는데 이런 다급한 상황에 선생님이 내주신 철학책이 너무나 괴리가 있다, 현실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가 의문스러웠다는 내용으로 쓴 글이었습니다. 전형적이지 않은 친구의 글을 잘 썼다고 칭찬하는 선생님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고 국어 과목,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인성여고 이한수 교사는 “초임 교사 시절 학생들이 문학을 통해 공감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수업을 고안했다”며 “문학을 읽고, 글을 쓰는 방식의 수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최근에는 입시 위주의 경쟁적 교육 환경에서 수업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1998년 2월 인성여고 졸업식에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최정화 제공

1998년 2월 인성여고 졸업식에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최정화 제공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최정화는 수업 시간에 뒷자리 친구와 자리를 바꿔 소설책을 읽었고, 고등학생의 시각에서 전형성을 탈피해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소설들을 썼다.

“그 당시엔 ‘언어·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 던졌어요.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습작 중 하나는 ‘라위맥도체’라는 소설입니다. 현 시대의 인류는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지만, 미래의 인류는 다섯 명이 만나야만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라’ ‘위’ ‘맥’ ‘도’ ‘체’라고 이름 지은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최정화에게 인성여고와 가까운 동인천은 향수로 남아 있다. 고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동인천역 인근에 자리했던 옷가게 ‘세대교체’에서 옷을 구경하고, 용돈을 모아 그 당시 흔치 않았던 피자집에서 조각 피자를 사먹었다.

“옷가게 ‘세대교체’는 청소년들에게 문화 공간 역할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입는 옷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매장에는 그때 유행했던 해외 팝 음악이 들렸습니다. X세대, 오렌지족이 유행하던 시기에 청소년들이 문화를 즐기면서 옷을 고르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요즘에는 일상적으로 피자를 먹지만, 그때는 사실 귀한 음식이었어요. 학생들이 용돈을 아껴서 먹을 수 있는 가격에 콜라랑 피자 한 조각이 세트로 나오는 피자집에서 발랄한 대중가요를 들으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던 추억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동인천은 문화의 중심지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990년대 말 인천의 학생들은 동인천에서 여가시간을 보냈다. 동인천역 인근에 자리 잡은 서점 ‘대한서림’은 청년들의 약속 장소로 통했다.

동인천에서 가슴 아픈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1999년 10월30일 중구 인현동 호프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10대 중·고교생 57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인천시는 청소년들에게 문화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인천시교육청학생교육문화회관’을 건립해 문을 열었다. 대한서림 뒤편에 자리한 이곳에서 청소년들은 탁구, 포켓볼 등 실내 체육 활동과 만화, 보드게임, 인터넷 게임 등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다.

■‘매일, 10년’, 소설가 최정화를 만든 시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진학한 최정화는 인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오갔다. 98학번이었던 그는 소설 창작 동아리, 학회 활동에 열중하며 소설을 꾸준히 썼다. 학생회 선후배들과 함께 사회운동,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대학가엔 소모임, 학생회 등 학생 자치활동이 활발했다. 사회운동과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여러 집회에 참여했지만, 대학생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듣고 함께 연대했던 농민 집회와 노동자 집회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FTA 쌀 개방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웠을 땐 농민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철도파업 당시엔 철도선을 따라 시위하던 노조와 만났습니다.”

대학 선배들과 환경주의, 여성주의 등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며 그들의 생각과 사상들을 쑥쑥 빨아들였던 최정화는 “열정적이었던 대학 생활이 지금 작품 활동을 하는데 밑거름이 되는 일이었다”고 설명한다.

대학 졸업 후 스물네 살 최정화는 소설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공모전에 출품했다. 2012년 단편소설 ‘팜비치’로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기까지 자그마치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소설가 최정화. 2024.9.26  /조재현기자jhc@kyeongin.com

소설가 최정화. 2024.9.26 /조재현기자jhc@kyeongin.com

최정화는 “글 근육을 키우는 시간이었다”고 정리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낮에는 일하고 매일 저녁 원고지 7매 분량의 글을 썼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모범생의 DNA가 다시 살아났다.

그가 거친 일들은 노무법인 사무 보조, 편의점 아르바이트, 백화점 캐셔, 논술 강사, 환경잡지사 사무 보조 등이다. 낮엔 다른 업무를 했지만 매일 저녁 글 쓰는 시간이 좋았다.

“생계 유지를 위해 한 일이었지만, 그때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노무법인 ‘참터’에서 만난 노무사들은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등단 이후에 노동자 소설을 장편으로 썼습니다. 최근 환경에 관한 작품들은 환경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난달 26일 인성여고에서 만난 최정화. 2024.9.26 /백효은기자100@kyeongin.com

지난달 26일 인성여고에서 만난 최정화. 2024.9.26 /백효은기자100@kyeongin.com

매일 자신의 글을 갈고 닦으며 작가의 삶을 준비한 최정화이지만, 공모전 탈락이 쌓이자 햇수로 10년 차에 불안함이 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포기하려고 할 때 권여선 작가의 문학동네 공모전 심사평이 그를 붙잡았다.

‘나는 최정화에게 심사평을 남기고 싶다. 당신의 글을 응원했다. 조금 더 노력해서 더 삐뚫게 나아갔으면 좋겠다. 계속 글을 써다오.’ 최종심에 올랐지만 안타깝게 떨어진 최정화에게 남긴 글이었다.

“친구에게 ‘문학동네 신인상 최종심에 올랐으니 확인해보라’는 연락이 왔어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업무를 마치고 곧바로 서점에 가 찾아본 ‘문학동네’ 심사평엔 권여선 선생님의 심사평이 남겨져 있었고,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 앉았습니다. 포기하려던 때 다시 힘을 내 글을 썼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최정화는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했고, 꿈에 그리던 소설가가 됐다. 이후 10년간 10권이 넘는 책을 냈다. 그는 스스로를 ‘원고를 빨리 쓰는 작가’라고 평했다. 한 번도 마감을 어겨본 적도 없다.

“무엇인가 성취하기 위해 노력을 쏟다가 거의 목표에 다다를 때쯤에 많은 사람이 혼란을 겪어요. 그때 조금만 더 밀고 나가면 자기가 원하던 길을 무사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오래 걸려서 무엇인가를 이뤄낸 사람은 오히려 그 이후에는 조금 더 편안하고 능숙하게 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은 저에게 필요했던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최정화는 심리에 관한 소설을 많이 썼다. 최정화의 첫 소설집도 인물의 정서를 담은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첫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도 인간의 심리적 모순, 내면의 불안함, 두려움 등을 세심하게 묘사한 ‘팜비치’ ‘구두’ ‘오가닉 코튼 베이브’ 등 소설들로 엮었다.

첫 장편소설 ‘없는 사람’을 쓰기 전 최정화는 재밌는 범죄 소설을 쓸 계획이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작가의 ‘태양은 가득히’를 좋아했던 그였다.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당해 생을 놓은 여러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접한 뒤 사회나 기업이 개인을 죽이는 것이 진짜 범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쓰는 것이 소설가의 책무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후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기업의 횡포에 목숨을 잃은 쌍차 노동자를 기리는 소설을 구상했습니다. 직접 만난 것도, 경험한 것도 아니라 조심스러웠습니다. 관찰자 입장에서 써보자는 마음으로 한걸음 떨어진 인물 ‘무호’를 만들어 놓고 서술했습니다. ”

최정화 작가는 문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사람들, 자기를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조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쓰는 소설, 에세이, 칼럼은 여성, 소수자, 노동자 문제 등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의 입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약자 입장에서 쓰다 보니 최근에는 환경, 그중에서도 동물의 입장에서까지 쓰게 됐어요.”

반려묘 먼지와 최정화. /최정화 제공

반려묘 먼지와 최정화. /최정화 제공

작품의 이름처럼 ‘지극히 내성적’이었던 작가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긴급한 메시지를 환경 칼럼으로 전달하고 기후 관련 워크숍, 강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의 소설가는 감각적 소설보다는 대중들에게 이 사회의 시급한 문제를 알리는 것을 더 우선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인간을 묘사한 첫 작품과는 다르게 사회 풍자, SF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소설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

기후행진에 참여한 최정화(아랫줄 가운데) /최정화 제공

기후행진에 참여한 최정화(아랫줄 가운데) /최정화 제공

최근에는 소설가, 시인, 평론가 등이 모여 ‘기후위기 작가 행동’ 모임을 만들었다. 지난달 7일엔 헌 이불·옷가지로 만든 깃발을 들고 기후행진에 참여했다. 올해 말에는 ‘기후위기 소설을 이렇게 씁시다’를 주제로 연속 강연도 준비하고 있다. 반려묘를 키우는 그는 동물의 입장에서 종차별주의에 반대한고, 차별과 혐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도우려는 활동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소설가의 눈으로 본 인천, 그리고 기후위기

최정화가 최근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이슈는 환경이다. 쓰레기를 줄이고, 물건을 재사용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직접 실천 중이다. 지난달 26일 모교인 인성여고에서 만난 최정화는 텀블러와 손수건을 사용했다. 가방에는 비닐봉지를 대신할 여분의 천 가방, 플라스틱 용기를 대신할 다회용 용기가 들어 있었다. 다 쓴 로션 통에 담겨 있던 립스틱은 리필스테이션(빈 용기에 물건을 담아주는 가게) ‘알맹 상점’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했다.

최정화는 최근 ‘쓰레기 매립지’ 문제로 뉴스에서 고향의 이야길 접했다. 그때마다 고향에 남은 가족과 조카가 생각났다.

“서울에서 만들어진 쓰레기가 인천으로 보내져 매립되는데 이미 인천의 매립지가 포화 상태라 매립할 수가 없고, 그런데도 서울에서는 계속 인천으로 쓰레기를 보내려고 한다는 뉴스를 접했어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고, 내가 버린 쓰레기가 내 고향에 묻히는 상황이라 애향심을 갖고 사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에게는 고향이고 부모님, 언니와 조카까지 살고 있는 공간입니다. 성인이 된 내가 서울에서 버린 쓰레기를 이제 스무 살인 조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처리하는 것이 마치 현재의 기후위기 문제를 미래 세대가 책임져야 하는 그런 구도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인천 중구 인성여고 앞 육교에서 최정화 소설가가 손을 흔들고 있다. 2024.9.26 /조재현기자jhc@kyeongin.com

인천 중구 인성여고 앞 육교에서 최정화 소설가가 손을 흔들고 있다. 2024.9.26 /조재현기자jhc@kyeongin.com

최정화는 언젠가 인천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인천에서 살았으니 인천에 대해 가장 잘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릴 때 제가 본 인천 바다는 쓰레기가 떠다니던 월미도의 노란 바다였습니다. 좀 더 커서 다른 지역의 파란 에메랄드 빛 바다를 처음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어린 시절의 바다를 청정한 바다가 아니라 쓰레기가 떠다니는 냄새나는 바다로 기억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진짜 ‘이 시대의 인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꼬마였을 때 만난 자연이 이미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거죠. 인천의 기억을 토대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환경 관련 활동을 연결해 더 리얼한 인천과 서해에 대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 약력

1979년 인천 출생

1992년 인천석암초 졸업

1995년 제물포여중 졸업

1998년 인성여고 졸업

2002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2년 단편소설 ‘팜비치’로 제15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

2016년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 장편소설 ‘없는사람’, 제7회 젊은 작가상 수상

2018년 소설집 ‘모든 것을 제자리에’, 단편소설 ‘부케를 발견했다’

2019년 장편소설 ‘흰 도시 이야기’

2020년 단편소설 ‘메모리 익스체인지’

2021년 ‘책상 생활자의 요가’, ‘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단편소설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

2022년 ‘비닐 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같이의 세계’, 소설집 ‘날씨 통제사’

2023년 단편소설 ‘봇로스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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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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