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철도’ 새 역사 발굴되다

입력 2024-10-24 11:37 수정 2024-10-24 17:19

미국인 건설 감독 후손, 2천500건 자료 기증

허종식 의원실서 125년 전 인천 자료 발굴

1890년대 경인선 건설 현장과 운행 현황 등

주요 자료 추가 검증·발굴 후 인천 전시 계획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 등 경인선 콘텐츠 多

‘철도원 삼대’ ‘미스터 션샤인’ 등 주요 무대

1890년대 경인철도 인천 구간 건설 현장과 노동자들 모습.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1890년대 경인철도 인천 구간 건설 현장과 노동자들 모습.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1899년 9월 18일 ‘거물’이란 뜻의 모갈(Mogul) 증기기관차가 서울 노량진을 떠나 제물포(인천항)로 출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철도’는 사람의 발과 말이 유일한 육상 교통이던 한반도의 시간 관념을 완전히 압축시킨 근대 문명의 상징이었다. 조성면 문학평론가는 ‘질주하는 역사 철도’(2012·한겨레출판)에서 “혹독한 식민 시대를 앞당긴 비극의 서막”이라고도 했다.

경인철도는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 부커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던 황석영의 장편 소설 ‘철도원 삼대’(2020·창비)를 비롯한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드라마의 주요 배경으로 다뤘다. 특히 경인철도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인 인천을 최대 무역항이자 서울 못지 않은 근대도시, 식민지 수탈 통로로 변모시킨 직접적 인프라였다.

경인철도와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가 쓰일 것으로 보인다.

■ 경인선 공사 감독 ‘보스트윅’ 자료 발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허종식(민·인천 동구미추홀구갑) 국회의원실은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소장 자료에서 인천 지역 경인철도 건설 과정과 운행 상황이 담긴 사진과 안내서 등 자료를 발굴했다고 24일 밝혔다.

경인철도 건설사업에 참여한 미국인 해리 라이스 보스트윅(Harry Rice Bostwick·1870~1931)의 외손녀가 지난 2017년 한전에 무상으로 기증한 2천500여 건의 사진, 문서 가운데 허종식 의원실에서 확인한 자료들이다. 보스트윅 사망 당시 미국 언론은 ‘한국 철도 건설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보스트윅 영문 명함. 사무실이 인천항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보스트윅 영문 명함. 사무실이 인천항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경인철도 건설 현장과 노동자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사진들이다. 1897년 3월 22일 인천 우각리(현 경인선 도원역 부근)에서 가진 경인철도 기공식 현장 인근에 있던 당시 인천의 랜드마크 ‘알렌 별장’의 선명한 사진도 이번 기증 자료에서 발견됐다.

1900년 7월 나온 ‘경인철도 안내서’의 내용이 흥미롭다. 철도 운행시간표와 철도를 탈 때 주의사항 등이 담겼다. 인천역에서 오전 6시, 7시 45분, 10시 45분, 오후 1시 45분, 4시 45분으로 하루 5차례 서울행 열차가 출발했다. 경성역(1900~1904년 경부선·경인선 종착역이던 서대문역)까지 1시간 45분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역은 인천역~축현역(동인천역)~우각동역(현 도원역 부근)~부평역~소사역(부천역)~오류동역~노량진역~용산역~남대문역(서울역)~경성역(서대문역) 등 10개였다. 인천~노량진까지 개통된 시점이 1899년이고, 한강철교가 준공된 때가 1900년 7월이었던 만큼, 열차 시간표를 새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1900년 7월 경인철도 안내서. 인천역부터 경성역(서대문역)까지 열차 출발 시간 등이 나와 있다.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1900년 7월 경인철도 안내서. 인천역부터 경성역(서대문역)까지 열차 출발 시간 등이 나와 있다.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안내서를 보면, 부정 승차를 하면 거리와 상관없이 추가 요금 5전(일본 화폐)을 내야 하고, 4세 이하 어린이는 무임, 4~12세까지는 성인의 반값으로 승차권을 살 수 있었다. 짐을 분실하더라도 책임지지 않지만, 옷이 훼손될 경우 최대 50원까지 변상해 준다는 내용도 있다.

1인당 30㎏의 짐을 초과하면 추가 운임을 내야 했다. 당시 경인철도가 여객뿐 아니라 물류 기능도 상당 부분 담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정감사 기간 국회의원실이 지역 역사에 관한 자료를 발굴했다는 것이 눈에 띈다.

허종식 의원은 “경인철도 인천 건설 현장에 있었던 보스트윅이 남긴 자료가 약 125년 만에 인천에서 빛을 본다”며 “인천의 철도 역사와 대한제국 시기 인천 상황을 복원할 수 있는 단초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가들과 함께 검증 작업을 거쳐 인천 자료를 더 확보해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알렌 별장 전경.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알렌 별장 전경.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 함께보면 좋을 문화 콘텐츠들

때마침 인천 중구 한국근대문학관에서 내달 10일까지 기획 전시 ‘벽해상전(碧海桑) : 인천 근현대 풍경’이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선 경인철도와 인천역에 관한 각종 사진과 문서 자료, 이와 연계된 시·소설·회화 등 예술 작품들을 꽤 많이 선보이고 있다.

경인철도 개통 이후 인천은 근대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인천역에서 넘어갈 수 있는 월미도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탕과 여관을 비롯한 ‘환락의 관광지’로 개발됐다. 인천역에서 월미도를 오가는 셔틀버스도 운행됐다고 한다.

김소월, 김기림, 박팔양 등 당대의 모더니스트들이 그때 인천의 풍경을 주목했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김기림의 시 ‘길에서(제물포 풍경)-기차’의 한 대목이다. 김기림이 읊은 기차는 경인철도다.

모닥불의 붉음을
죽음보다도 더 사랑하는 금벌레처럼
기차는
노을이 타는 서쪽하눌 밑으로 빨려갑니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인천과 영등포, 경인철도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주인공 집안은 인천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주인공 이이철은 철도 공작창 견습공으로 일하다 인천으로 와서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참여한다.

1890년대 경인철도 건설 현장과 노동자들 모습.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1890년대 경인철도 건설 현장과 노동자들 모습.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백범 김구 선생의 청년기를 그린 영화 ‘대장 김창수’(2017)에서는 경인철도 건설 현장이 묘사된다. 1896~1898년 ‘치하포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인천감리서에 투옥 중이던 김구(당시 김창수)가 경인철도 건설 현장에서 노역에 동원됐다는 ‘상상력’이 발휘된 장면이다.

최근 드라마 ‘정년이’로 사극에서 두드러진 강점을 보이는 배우 김태리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에서도 경인철도와 인천항 일대가 비중있게 나온다.

보스트윅 후손이 한전 전기박물관에 기증한 자료는 약 2천500건이다. 앞으로 발굴·검증 작업을 통해 경인철도에 관한 이야기가 새로 발굴되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창작될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990년 7월 경인철도 안내서 표지.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1990년 7월 경인철도 안내서 표지. 2024.10.24 /허종식 의원실 제공(한전 전기박물관 자료)




경인일보 포토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박경호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