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아이에게 부모의 시간을 돌려주자

입력 2024-10-31 20:26 수정 2024-10-31 20:31
지면 아이콘 지면 2024-11-01 14면

道 4조원 써도 "맡길곳 없다" 현실
아이 함께할 시간 보장 가장 중요
기혼여성 58.4%가 경력단절 경험
시범 사업 '0.5잡·0.75잡' 큰 의미
근로시간 줄이고 경력 유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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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운선 경기도일자리재단 북부사업본부장
집 근처 마트를 다녀오던 길, 우연히 같은 단지 주민을 만났다.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니 "글쓰는 일을 하다가 아이 낳고 잠시 쉬고 있어요", 그리고 이어진 말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요."

순간 어리둥절했다. 우리 단지 안에도 어린이집이 있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다니?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아이가 아플 때마다 엄마가 직접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휴가나 반차도 한계가 있으니 그럴 겁니다"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지난 9월 통계청에 따르면 경기도 기혼 여성 5명 중 1명이 경력 단절 여성, 일명 '경단녀'다. 경단녀란 주로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여성이다. 이들이 경력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10년 넘게 변함없이 '육아'다. 아니, 경기도에서만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쓰는 돈이 얼마인데, 아직도 육아가 경력 단절의 가장 큰 이유라니!



2024년 경기도 예산 36조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사회복지(45.75%)다. 이 중 '보육·가족 및 여성' 분야에 12.29%, 약 4조4천억원이 투입된다. 한 해에 4조원이 넘는 돈을 쓰고도 여전히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라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재 경기도는 '0세아 전용 어린이집', '야간 연장 어린이집', '장애아 보육 어린이집'에 더불어 '외국인 자녀 보육'까지 지원하고 있다.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 24시간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동네마다 하나씩 만들면 육아와 경력 단절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게 하면 부모가 마음 편히 직장을 다닐 수 있고 아이도 행복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 부모가 함께할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즉, 부모의 일하는 시간을 줄여 아이와 보낼 시간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부모의 근로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아이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일자리 나누기'다.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여러 명이 나눠 근무해 근로 시간을 줄이고, 동시에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부모는 아이와의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고, 여성 경력단절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여성가족부의 '2022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의 58.4%가 경력단절을 경험하며, 재취업까지 평균 8.9년이 걸린다. 그럼에도 재취업 후 임금은 경력단절 이전의 84.5% 불과하다. 경력단절 후의 지원정책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경력단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기도에서 시범적으로 추진 중인 '0.5잡 & 0.75잡 프로젝트'는 큰 의미가 있다. 0.5잡은 주 20시간 근무(하루 4시간씩 또는 주 2~3일), 0.75잡은 주 30시간(하루 6시간씩 또는 주 3~4일) 근무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공공기관과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받은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계획 중이다.

물론 근로자의 임금 감소나 사용자의 직업교육비 및 사회보험료 지출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력 단절 후 재취업한 여성들이 이전보다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로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경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다. 예산을 '보육시설 확충'보다는 '근로 시간 단축'에 할당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자기계발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로빈 샤르마는 그의 저서에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당신의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더 많은 돌봄 시설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보육시설 확충과 부모의 근로 시간 단축,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 선택이 가족의 미래를 바꾸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남운선 경기도일자리재단 북부사업본부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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