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창간특집

2500만 국민의 생명줄… 보듬은 평범한 영웅들 [수도권 운명을 닮은 '팔당' 이야기·(4)]

입력 2024-10-31 20:53 수정 2024-10-31 20:59
지면 아이콘 지면 2024-11-01 10면

팔당을 지키는 사람들


# 댐 건설 이후 생계 이어온 백발의 팔당호 어부

1973년 당시 수몰민에 어업권… 오래된 목선 타고 고기잡이
블루길 등 외래어종 '파수꾼'… 어업권 승계 불가능해 걱정

# 생태계를 연구하고 수질을 지켜내는 연구관



2003년 전국 50여가지 배스 요리 개발 시식 행사 심각성 알려
'겨울 녹조' 최초 뒤덮었을때 밤낮없이 원인 연구로 구슬땀

# 변함없는 용수 공급 묵묵히 일해온 직업인들

수력발전소, 관련법 따라 시설물 주기적 유지관리·보수보강
댐, 1초당 124t 물 상시 방류 … 취수장 19곳에 적정량 공급


팔당호 마지막 어부로 불리는 안호명
팔당호 마지막 어부로 불리는 안호명씨가 양손에 노를 쥔 채 물살을 가르고 있다. 2024.10.30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오늘도 팔당호는 가을바람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인다. 그 풍경을 바라보자면 몹시 평화롭다. 그 평화에는 이곳을 지켜온 평범한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팔당댐 건설 이후부터 이어온 백발의 팔당호 어부, 팔당 생태계를 연구하고 수질을 지켜내는 연구관, 또 변함없는 용수 공급을 통해 수도권 시민의 젖줄을 지키는 직업인들이 바로 그 평범한 이들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본 팔당의 50년은 곧 이들의 삶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팔당호를 지키는 일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광주 퇴촌면 인근 마지막 뱃사공인 안호명
광주 퇴촌면 인근 마지막 뱃사공인 안호명씨. 2024.10.30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 팔당호 1세대 어부 안호명씨


윤슬이 반짝이는 여름이었다. 지난 7월15일, 광주 퇴촌면 뭍에서 3㎞ 남짓한 팔당호 중앙에 배 한 척이 떴다. 뱃머리에는 백발의 노인이 앉아있었다. 팔당호가 걸쳐있는 광주의 마지막 어부로 불리는 안호명(86)씨였다.

"(댐 건설 전에) 실개울이 흐르던 때엔 피라미 잡아먹고 달팽이 잡던 그런 곳이었죠. 전부 논밭이었고요. 그게 전부 댐 아래로 수몰됐어요. 땅을 많이 갖고 있던 사람은 (보상받아) 서울로 가고 나처럼 재산도 없고 땅도 많이 없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이렇게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이어나갔죠."

정부는 1973년 댐을 만들면서 팔당 규제지역 수몰민 33명에게 어업권을 줬다. 안씨는 그 중 한명이다. 안씨는 댐이 생긴 후부터 팔당호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한두명 겨우 앉을 수 있는, 나무로 만든 목선이 그의 배다. 이날도 안씨는 그 오래된 목선을 타고 물살을 갈랐다.

"새벽 3시쯤 나가요. 전날 저녁6시쯤 쳐둔 그물을 걷으려고요. 피라미 같은 건 금방 죽거든요. (물고기를) 날씨가 더울 때는 새벽 12시쯤 나가서 그물 쳤다가 3시간 뒤에 걷어올 때도 있고요. 많이 못 잡아도 매일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저 밥벌이가 궁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안씨는 뱃일로 삼남매를 모두 키웠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다보니 이제 뱃일을 그만두라는 자녀들의 간곡한 요청에도 다시 배를 탄다.

"삼남매를 고등학교까지 다 보냈죠. 그때는 고등학교 다니는 애들도 그렇지 많지 않을 때였어요. 팔당호 덕분에 그래도 애들이 직장생활도 하고 또 내가 잡아온 고기로 식당도 운영해요. 이제 건강 때문에 저한테 그만하라고 하는데… 일을 안하면 뭐합니까."

안씨가 매일 새벽 일어나 그물을 정리하고 팔당호에 배를 띄우는 이유는 단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팔당호를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이 어부들이라서다. 각종 기술이 접목돼 이전보다 빠르면서 더 많은 어획을 할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여전히 50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어업을 이어나가는 이들에겐 팔당호에 대한 애정과 사명이 깊다.

여전히 목선을 타고 노를 저어 팔당호 한가운데로 나아가 직접 그물을 치고 거두는 방식을 '불편하지만' 수용하는 건 이곳이 팔당이기 때문이다.

"작은 모터 정도 달 수 있게 (정부에서) 허가해줘서 그나마 요새는 모터 힘을 활용해서 노를 저어서 좀 나아졌어요. 그래도 힘들죠. 그래도 매일 이렇게 팔당호를 살피고 지키는 건 어부들입니다. 팔당호에 배스, 블루길 같은 외래어종이 많아요. 2~3년 전에 많이 잡아서 지금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건데도 이정도거든요. 어부들이 많으면 특정 어종이 많아질 일이 없을 텐데… 팔당호를 지키는 파수꾼들이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팔당호 어업권 승계가 불가능하다 하니 걱정이 큽니다. 이제 저 가고 나면 누가 팔당호를 지키나요."

아쉬움 가득한 말을 뒤로 안씨는 뭍을 향해 뱃머리를 틀었다. "씌익씌익" 목선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강태구 물환경연구소 소장(왼쪽)과 변명섭 연구관
강태구 물환경연구소 소장(왼쪽)과 변명섭 연구관. 2024.10.30 /박소연PD parksy@kyeongin.com

■ "팔당이 제 역할 할 수 있도록"… 한강물환경연구소·팔당수력발전소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평 양수리 팔당호 옆에는 한강물환경연구소가 있다. 1988년 12월31일 호소수질연구소라는 이름으로 개소한 이곳은 팔당호 수질·생태계를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한 기관이다.

1999년부터 한강수계에 서식하는 물고기를 연구해온 변명섭 한강물환경연구소 환경연구관은 연구소가 떠들썩했던 일화 몇가지를 회상했다. 그 일화들의 대부분은 팔당호에 환경 문제가 생길 때였다. 연구소는 그때마다 해결사로 나서야 했다.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책 토대를 조성하는 데이터를 분석해내야 했다.

"2003년에는 배스가 (급증해서) 문제였어요. 전국 최초로 팔당호 배스를 잡아 시식하는 행사를 했습니다. 50여가지 요리를 개발했고 먹어서 없애자는 취지였어요. (외래어종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릴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행정안전부에서 외래어종 관리 예산을 지자체에 지원하게 됐죠."

겨울 녹조가 팔당호를 뒤덮은 적도 있었다. 지난 2011년과 이듬해 여름까지 팔당호에는 조류주의보가 발령됐다. 2012년에는 강원도 춘천과 한강 본류까지 녹조가 심해졌고, 악취로 인한 민원도 잇따랐다. 당시 연구소 직원들은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했다. 변 연구관은 이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겨울 녹조는 이때가 처음이었거든요. 원인을 밝히려고 당시 팔당호 상류에 있는 댐 방수량 변화, 강수량 변화, 주변 오염원 변화, 기상상태 등에 대한 종합 조사를 진행했어요. 굉장히 광범위한 조사였는데, 결국 원인을 밝혀내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했죠.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땀흘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윤준희 팔당수력발전소장
윤준희 팔당수력발전소장. 발전소는 용수 공급, 홍수 조절, 전력 생산 등의 업무를 한다. 2024.10.30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팔당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이들도 있다.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팔당수력발전소가 팔당댐의 본산이다. 외진 곳에 위치한 발전소는 초입부터 경계가 삼엄했다. 엄격한 검문을 마치고 들어선 발전소는 의외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풍경에 잠깐 한눈 판 사이, 건물 안에선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윤준희 팔당수력발전소장은 발전소 역할을 설명했다.

"팔당댐은 수도권 용수 공급, 홍수 조절, 전력 생산 등을 담당합니다. 발전소에서는 시설물 특별안전 시설물 관리와 유지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댐을 주기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며 보수 보강하고 있습니다. 오는 2027년 1월말까지 댐 시설 전체에 대한 보수 보강 작업을 진행 중인 것도 이런 이유죠."

팔당댐은 1초당 124t의 물을 상시 방류한다. 댐 상하류에 있는 취수장 19곳에 적정량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이 물이 수도권 모든 지역에 공급된다. 우리가 밥도 짓고 물도 마시고 씻을 수 있는 그 물이다. 이를 관리하는 일이 발전소 직원들의 업무다.

"남한강과 북한강 물은 전부 팔당댐으로 내려옵니다. 67억t의 물 중 팔당댐에 2억4천만t이 저수될 수 있도록 15개 수문을 수시로 열고 닫으며 조절하는 거죠. 수위 변동 폭은 50㎝ 이내가 되도록 조절해야 하고요. (수위가 갑자기 올라가면 홍수 위험이 있고) 수위가 너무 낮으면 댐 인근 취수장에서 취수를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굉장히 미세하고 섬세한 작업입니다."

팔당댐 탄생과 함께 운명이 시작된 팔당수력발전소의 고민도 깊다. 팔당 상수원 규제지역 주민들과 접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도 그 이유다. 수질 관리를 위해 늘 상수원 규제지역 주민에게 제재를 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지만, 그럼에도 피해 받은 이들의 의견까지 수렴해야 댐을 보다 안전하고 원활하게 운영할 것이라는 소신에서다.

"분기에 한번씩 지역 주민들 의견을 듣고 있어요. 지자체, 주민과 소통을 많이 하고 이를 댐 운영 사안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팔당의 평화를 지키는 사람들은 나이도, 직업도, 하는 일도 다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팔당의 곁에서 하루하루 근면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공직생활 대부분을 한강물환경연구소에서 팔당호를 연구하며 보낸 변 연구관에게 "팔당 50살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냐"고 물었다.

"50년이 흘렀네요. 앞으로도 팔당의 시간은 계속 갈 겁니다. 중요한 건 수도권 물의 근원이 한강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보호돼야 할 곳이 여기 '팔당'이라는 지역입니다. 앞으로도 팔당이 깨끗하게 유지 관리돼야 하고 우리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환경은 정책이 중요합니다. 개발과 보존의 대립, 어떻게 균형을 잡아갈 것인가, 이 부분을 결정하는 게 정책이라고 봐요. 그리고 팔당 생태계 운명을 좌우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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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공지영·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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