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민곁 70년, 의정부 미군기지… 함께 살아갈 '한 길' 열리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6)]
'캠프레드클라우드' 관통 도로 개방
1953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전쟁·냉전 유산
전형적인 경기도 소재 '전쟁 문화 유산' 모습
초기 건축물·용도 시설물 현재까지 다수 남아
의정부 도시경관 한축… 유기적 기능도 의미
근현대사적 중요성·활용도 고려 보존 방침
60여개 건물 역사적 가치로 존치 의견 전달
의정부 캠프레드클라우드 후문. 지난해 개방된 2차로를 이용하면 경민대학교 방면에서 의정부 종합운동장으로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본래 보초병이 서 있던 자리는 현재 캠프 철수로 비어있다. 2024.11.4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지난해 7월 1일은 의정부 시민에게 뜻깊은 날이었다. 70년 동안 닫혔던 도심 속 미군기지 캠프레드클라우드(CRC)의 문이 열렸다. 경민대학교 방면에서 의정부 종합운동장까지 먼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운전자들은 캠프클라우드를 관통하는 2차선 도로로 고작 2분이면 반대편에 닿을 수 있다. 이 도로가 개방되기까지 70년이 걸렸다.
캠프레드클라우드는 경기도 전쟁 문화 유산의 가치와 보존, 그리고 문화 유산 전승을 위한 지역의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도시 한가운데를 꿰찬 과거 유산이 현재를 사는 시민들에겐 무슨 의미일까란 물음에서 시작한다.
의정부시 가능동, 녹양동 일대 83만6천㎢가 미군에 공여된 건 1953년 7월 3일의 일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당시 연합야전군사령부(CFA)가 이곳에 주둔했다. 이후 1953년부터 1972년까지는 미군 제1군단이 주둔했는데 1957년 5월 미 의회 대훈장을 받은 레드 클라우드 상병의 이름을 기려 캠프레드클라우드라는 명칭을 받았다.
미 24사단 19연대 E중대 소속 레드 클라우드 상병은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캠프레드클라우드는 1971년 변화를 맞는다. '미국은 앞으로 베트남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은 피한다', '미국은 아시아 제국과의 조약상 약속은 지키지만,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란이나 침략에 대해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하여 대처해야 할 것이다'란 내용을 담은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의 영향이었다.
미국의 막대한 군사적 비용 지출과 베트남전으로 인한 반전 여론으로 내려진 닉슨 독트린이 캠프레드클라우드에서 미군 제1군단과 제7사단 철수로 이어졌다. 캠프레드클라우드의 탄생과 변화 모두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 굵직한 세계사의 사건과 연결돼 있다.
1980년 3월 14일 캠프레드클라우드의 한미 1군단사령부는 한미야전사령부로 이름을 바꾼다. 이후 1992년 한미연합야전군사령부(ROK/US CFA) 해체 등의 변화를 거쳐 2015년 한미연합사단이 주둔했다 최종적으로 2018년 10월 18일 캠프레드클라우드는 폐쇄된다.
1953년 시작돼 2018년 끝난 캠프레드클라우드는 한국전쟁과 냉전의 유산이다. 부지 남측에 서부로와 교외선(고양~의정부)이 지나고 부지 북측에 의정부종합운동장이 있는 도심 속 위치도 전형적인 경기도 소재 전쟁 문화 유산의 모습이다.
전쟁을 위한 기능적 역할로 경기 북부에 소재하며 본래 외곽에 있다가 도시 팽창으로 도심 속으로 편입된 모양새도 그렇다. 66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지 크기는 의정부라는 도시가 발전하고 경계선을 확정하며 그려나가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캠프레드클라우드의 과거가 이렇다면 남은 건 미래다. 처음 캠프레드클라우드는 임시막사(퀀셋)와 텐트로 이뤄졌었지만 여러 부대 주둔으로 수년에 걸쳐 시설 개선이 일어났다. 120여채 건물이 있는 캠프에는 여전히 수많은 퀀셋을 비롯해 현대 의료 클리닉, 1980년대 모습을 보여주는 병영, 골프코스, 제2보병사단 박물관, 그리고 돌 예배당이 있다.
다양한 용도의 건물은 하나의 구조로 특정되지 않는다. 형성된 시대가 다르고 당시의 필요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인데, 반세기 가량 주둔이 이어지며 캠프레드클라우드는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처럼 기능했다. 초기 건축물과 용도 시설물이 다수 남아 있다는 게 캠프레드클라우드와 여타 미군기지가 구별되는 지점이다.
캠프레드클라우드 안 예배당 모습. 2차선 도로 외 나머지 지역은 접근이 불가하다. 사진은 도로와 인접한 곳에 자리잡은 예배당. 2024.11.4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
이 전쟁 문화 유산을 보존, 활용하기 위한 계획이 의정부시에 의해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다.
미군기지는 한반도 전역 중 경기도에만 절반 이상이 배치돼 있을 정도로 많다. 반환협상으로 시민 품에 돌아오고 있는 미군기지가 많지만 시설물 존치 여부는 불투명하다. 반환에 반드시 필요한 환경정화 과정에서 시설물이 철거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미군은 군→군단→사단→여단→대대→중대 순으로 편재되는데 캠프레드클라우드는 1군단사령부, 2군단사령부, 제2사단사령부 등 상급부대 사령부가 소재했다. 한강 이북에서 전투부대 사단급 이상 사령부 중에선 가장 최근까지 위치했던 기지로 꼽힌다.
상급부대 위상에 걸맞게 군 중요 작전 시설, 행정시설, 주거, 교육, 문화, 체육, 판매, 종교까지 도시 기능 모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캠프레드클라우드의 보존과 활용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지 내부에서 해소하기 어려운 도시 기능은 주변 지역에서 미군 대상 상업시설과 교류하며 상호 보완했다.
캠프레드클라우드가 의정부 도시 경관의 한 축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유기적으로 도시 기능을 만들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 그럼 반환미군기지를 완벽히 정화하고 고스란히 들어내면 올바른 보존, 활용 방법일까. 답은 단순하지 않다.
캠프레드클라우드 통행로를 개방한 의정부시는 근현대사적 중요성과 활용도를 고려해 보존해야 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 건축물은 환경정화 과정에서 제거될 수밖에 없지만, 이 중 60여개 건물은 역사적 가치에서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방부에 전달했다.
캠프레드클라우드가 존속한 75년의 세월은 한국이 때론 세계사의 가운데에서 때론 변방에서 변화를 맞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몰아친 파도의 흔적이 도시 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미군기지에 새겨져 있다.
미군기지라는 전쟁 문화 유산은 경기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이 보유하지 못한 고유한 가치다. 도시 팽창으로 미군기지가 도심으로 흡수되고 주변과 유기적으로 교류하며 형성한 도시 기능도 경기도 고유의 것이다. 캠프레드클라우드는 경기도 미군기지 보존과 활용의 대표 사례다. 어떻게 지키고 활용할 것인지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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