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드라마의 진가 느끼게 한
연극계 베테랑 여배우의 열연
“박정자, 손숙, 윤석화 같은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의 모노드라마(1인극) 레퍼토리를 과거에 극단 산울림이 만들어 준 것처럼 전현아라는 배우만의 모노드라마를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1~3일 인천 중구 신포아트홀에서 첫 공연을 마친 원로 연출가 박은희의 신작이자 중견 배우 전현아의 모노드라마 ‘통화중’을 기획·연출한 이유에 대해 박 연출가는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저는 3일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전현아 배우는 40대 중반의 주부 ‘은우’를 맡았습니다. 이역만리 동유럽의 한국기업 해외지사로 파견된 남편을 따라온 은우는 전화도 TV도 없는 공간(남편도 항상 부재중)에서 절대적 고독을 느낍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가상의 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이는) ‘가산’이란 사람에게 편지를 쓰면서 고독을 견디고 한줄기 희망의 빛을 찾으려 노력하고, 그 빛을 결국 보게 됩니다.
고독감, 호소, 눈물, 웃음, 때론 격정을 쏟아내며 1시간 10분 동안 홀로 극을 이끄는 전현아 배우의 열연을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지켜봤습니다. ‘모노드라마의 진가가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은희 연출가가 1974년 연극인 이원경 선생에게 발탁돼 극단 고향의 연출부에 입단, 연극계 입문한 지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박은희 연출가는 1992년 우리나라에 ‘교육연극’(Educational Theatre)을 처음 소개한 1호 연출가이자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과 남동문화예술회관(현 소래아트홀) 관장을 지냈습니다. 오랜만에 신작을 발표해 반갑기도 합니다.
박은희 연출가는 이번 작품의 기획 의도에 대해 “현대를 살아가며 누구나 생각지 않게 겪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고립된 삶이 안겨주는 감정들, 소외나 향수, 외롭다거나 쓸쓸함에서 오는 비감에 빠져 눈물과 원망 속에서 극단적 선택도 불사하려는 현대인들에게, 함께 자기 안에서 관념으로 승화시키는,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한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연극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훈동의 서간 에세이 ‘붉은 유뮈’(2004)를 원작으로 삼아 각색했습니다. 은우가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극이 진행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저는 이 연극을 보면서 이성복 시인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시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이 시의 화자와 ‘통화중’의 은우가 겹쳐 보이기도 했고요.
제가 왜 이 같은 생각을 갖게 됐는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앞으로 전현아만의 레퍼토리 ‘통화중’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현아 배우는 인천 출신입니다. 원로 배우 전무송의 딸입니다. 부녀 배우입니다.
이성복의 ‘편지’ 일부 인용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매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내 동생이 보고
구겨 버린다 이웃 사람이 모르고 밟아 버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길 가다 보면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있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접어
날린다 그래도 매일 편지를 쓴다 우체부가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갈 때도 있다 한잔 먹다가
꺼내서 낭독한다 그리운 당신…… 빌어먹을,
오늘 나는 결정적으로 편지를 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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