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어두운 밤이 지나면 새벽 이슬로 곤한 잠에 빠져있던 세상의 낙원은 촉촉히 잠을 깬다. 한발씩 디딜 때마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지상과는 점점 멀어지고 내 눈앞에는 또 다른 세상의 낙원이 펼쳐진다.” 유명한 독일의 사상가 칸트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삼림욕을 즐겼다고 한다.

나 역시 삶의 딜레마에 빠질 때면 숲을 찾곤한다. 이곳에서는 산소와 각종 식물이 만들어낸 살균물질인 피톤치드로 인해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양이 증가하는 양이온을 상쇄시켜 자율신경을 진정시키고 혈액순환을 돕는 음이온도 풍부하다.

숲이 주는 혜택은 이뿐 아니다. 나뭇잎은 일정한 비율의 강우량을 차단하는데 땅으로 떨어진 강우는 속도가 줄어 토양의 파괴가 최소화 된다. 나무의 뿌리에 의해 생긴 토양의 공간은 물의 흡수와 기층을 제공한다. 따라서 수목은 뿌리를 통과하는 물의 일부를 소비하고 나머지를 지하로 천천히 통과시켜 토양침식을 막아준다. 이외에도 대기정화, 휴양기능 등의 공익기능을 환가 한다면 우리나라 삼림은 1년간 적어도 50조원 정도를 제공하는 든든한 자연의 보고가 되는 셈이다.

특히 교토의정서가 1997년 최종 채택됨에 따라 삼림활동에 따른 온실가스 흡수량을 탄소배출권으로 인정하고 있어 배출권거래서에서 매매가 가능해 경제적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거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삼림은 말 그대로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삼림이 점차 훼손되어 가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매 2초마다 축구경기장 넓이의 삼림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무분별한 개발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현재와 같은 삼림 파괴가 계속될 경우 머지 않은 장래에 지구 전체의 삼림 가운데 10%만 남고 모두 황폐화 될 것이란 우려다. '지난 30년 동안 파괴된 삼림의 면적이 1만년에 걸쳐 사라진 삼림 면적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건이 실제로 필리핀에서 일어났다. 라니냐의 영향권에 들 때마다 필리핀 대부분이 큰 피해를 입는다. 1991년 폭우로 레이테섬 서부에 홍수가 발생해 8천여명의 섬 주민이 사망했다. 이후에도 2003년 12월에는 레이테섬 남부에 위치한 릴로안 마을에서 산사태로 해안가 마을이 매몰되어 83명이 생매장 되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자연재해로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의 이재민이 속출하는 크고 작은 피해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또다시 2월에 일어난 레이터섬 지진은 사망자 200명을 포함해 최소 1천700명의 인명피해를 불러왔다. 산사태 직전 리히터 규모 2.6의 약진이 단초지만 이 사태의 직접적인 1차 원인은 무분별한 벌목에 있었다.

필리핀 정부가 자행되는 무자비한 벌목을 중단시킬 방안을 세워 삼림보전에 조금의 노력을 더 했더라면 이처럼 예고되는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옛 독일 임업인들은 우스갯소리로 너도밤나무 한 그루 팔면 벤츠 한 대를 살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두께 42㎝이상에 길이 7.2m정도의 소나무는 대략 720만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벤츠 한 대. 낙원의 눈, 낙원의 속삭임과 720만원을 바꿀 수 없듯이 눈앞 이익만을 좇아 하나하나 파괴해 나가다 보면 눈과 귀가 멀어버린 낙원은 언제 우리를 버릴지 모른다.

숲은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들을 수 있게 선물했고 푸른 생명의 생기로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해주었다. 반면 우리는 이제까지 숲을 헐벗기고 헤집는 일만 자행해 왔다. 우리를 보는 그들은 욕심에 가득 찬 인간 세상에 빠져 영원히 천당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타락천사의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식목일을 맞아 손에 들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염치없는 인간의 변명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윤 인 철(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