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아동작가 현덕

그러나 최근 그의 동화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현덕이라는 작가의 종적이 탐구되고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그의 인생 역정을 연구한 결과물이 최근 학계의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또 '너하고 안놀아' 등 동화는 어린이들의 필독서로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연극 작품으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우리 동화에 '노마'라는 캐릭터를 처음으로 내놓은 현덕의 업적은 입이 닳도록 칭찬해도 아깝지 않다. 지난 1988년 정부가 월북 문인들에 대한 해금조치를 하기 이전까지 우리 사회는 현덕과 그의 작품을 금기의 영역에 가둬 놓았다.
그러나 지난 1990년대부터 카프 이후의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 현덕의 아동문학 작품들이 새로 발굴 소개되면서 그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쌓여가고 있는 추세다.
부평여자공업고등학교 원종찬 선생은 지난 10여년동안 현덕 복원 작업에 매달린 끝에 인하대학교 국문학과 박사 논문을 제출했다. 그는 현덕이 그동안 남한에서 주목받지 못한 이유를 몇가지로 분석한다. 오랫동안 '레드 콤플렉스'의 덫이 그의 작품을 우리 사회에서 용인하지 않았고 그 영향으로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
또 남한에는 그의 연고자들이 거의 없어 지금까지 생애조차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했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우리 문단의 대립도 현덕을 지워버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최근 현덕에 대한 기념비를 인천에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부 작가들에 의해 거론됐으나 좌익과 월북이라는 그의 행적이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지역 문학계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무너진 21세기에 그의 전력보다는 작품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서울 출생이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인천에서 성장한 탓인지 그의 작품 배경은 인천이 주류를 이룬다. 때문에 현덕이 인천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지역 문인들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덕의 본명은 현경윤이다. 현덕이라는 이름은 그가 문학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쓰던 필명으로 추정된다. 그는 지난 1909년 2월15일 서울에서 아버지 현동철과 어머니 전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현흥택은 민영익 수하의 무관으로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친러시아파에 속했던 그는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멸망한후 기록이 보이질 않는 점으로 보아 정치적으로 소외된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 현덕이 태어난 삼청동 별장은 조부 현흥택의 사교장소다. 때문에 현덕의 가계는 당시 상당한 재력을 축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업을 하다 가산을 모두 탕진한 그의 부친 때문에 현덕은 어렸을적 생활이 고달팠다. 위세가 당당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늘 자신을 밑바닥 인생으로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고 그의 문학작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제일고보를 중퇴한 그가 힘겨운 청년기를 보내면서 위안이 됐던 것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었다. 또 학교를 중도 포기하고 막노동을 하면서 떠돌던 때 김유정을 만나 문단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그는 지난 1927년 한 신문사 주최의 독자공모에 '달에서 떨어진 토끼'로 일등 당선한다.
현덕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남생이'가 일등 당선하면서부터다. 이후 1940년까지 그는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벌이며 뛰어난 단편소설과 동화 등을 세상에 내놓는다. 해방 이후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에 뛰어들어 진보적인 문학운동에 적극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의 대대적인 좌익 색출을 견디다 못한 그는 지하로 숨어들어 문학운동을 벌인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월북하게 되고 숙청당한 지난 1962년까지 북한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 사라진다. 지금도 현덕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덕은 식민지와 분단으로 말미암은 파행의 근대성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로 여전히 낯설다. 아직도 굳건한 이념의 틀이 현덕을 옥죄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근대 문학의 양대틀인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합류 지점을 만들어낸 현덕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한 시점이다. 사회의 통합과 건강한 문학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이희동기자·dhlee@kyeongin.com> 이희동기자·dhl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