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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부 김병훈 선생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기품있는 선비였다는 사실은 시아버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김병훈 선생의 증손주 며느리 홍사숙(77)씨는 집안 가풍에 대한 긍지가 남다르다. 대제원이라는 한의원을 운영했던 시아버지 상규씨는 늘 근엄하고 매사 정확한 사리로 아버지 김병훈 선생을 빼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홍씨는 기억을 되살린다. 이같은 청빈한 삶의 자세를 후손들이 그대로 이어받아 단단한 가풍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김병훈 선생은 대제원 한쪽에 서재로 마련한 '지수제'에서 많은 후학들과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특히 김병훈 선생은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고도 선비정신 만큼은 절대로 흐트러뜨리지 않을 만큼 꼿꼿하게 생을 마감했다는게 홍씨의 전언이다.
홍씨는 “지금 집안 창고에 많은 서예작품 등이 있지만 아직까지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김병훈 선생을 비롯, 가족들의 삶이 외부에 요란스럽게 노출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수줍어 한다.
그녀는 특히 “최근까지 가족들은 3년 상을 치를 만큼 유교적 전통을 지켜왔다”며 “시집와서 늘 무릎 아래까지 내려 오는 한복에 버선을 신고 생활해야 할만큼 어른들이 엄했다”고 말한다. 특히 김병훈 선생의 말년에 인천지역의 최고 지식인들로 꼽혔던 후학들이 늘 '지수제'를 찾아와 자세를 가다듬곤 했다.
<이희동기자·dhlee@kyeongin.com>
이희동기자·dhl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