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 미령씨가 아버지 우문국 화백의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버지는 배고프고 힘든 길을 걸으셨어요. 그렇지만 항상 당당하셨지요. 청렴결백하고 담백하게 예술가의 길을 걸었던 분이셨어요.”

   고여 우문국 화백의 딸 우미령(48·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씨는 고여의 삶을 이렇게 소개하면서 “베레모가 아주 잘 어울리셨던 분이었고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는 항상 꽃과 나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문국 화백의 예술적 정열을 가늠할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우 화백의 부인은 백범 김구 선생의 수양딸로 김구선생이 직접 쓴 글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 화백이 한국전쟁 당시 피란차 머물렀던 경주에서 백범 선생의 글을 전당포에 맡기고 가마를 사서 인형을 제작했다.

   가장으로서, 생활인으로서는 낙제점을 받을지 모르나 어찌 보면 '엄마 어렸을적에' 등 인형을 이용한 전시회가 보편화된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시간을 앞서간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나고 김구 선생의 글을 찾기 위해 전당포를 찾아갔을 때는 전당포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고 한다.

   우씨는 어렸을 때 아버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동석했던 기억을 털어놓으면서 “그 당시 예술인들은 지금의 술꾼들과 비교할 수 없는 신사들이었다”며 “술 자리에서도 항상 존칭이 오갔고 술자리가 파하는 시간까지 자세에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우씨는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겨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아버지가 후진들에 의해 회고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병상에서 접하고 크게 기뻐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을 맺었다.
고여 우문국 작품세계는 유족들이 운영하는 다음 카페(http:cafe.daum.net/goyeo)에서 만날 수 있다.

   우 화백의 유족은 부인 최분순(77)씨와 경복(56)·선덕(52·여)·미령(48·여)·경원(46)씨 등 4남매. 이 중 우선덕씨는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가브리엘의 침대', '서서 자는 나무들', '살아있는 산', '하얀 여자' 등 다수의 장편소설을 발표, 우 화백에 이어 부녀 2대에 걸친 인천 예술인 가족의 맥을 잇고 있다.

<임성훈기자·ho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