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할아버지는 주위에 문인들이 끊이지 않았던 분입니다.”

조선 한학자 변영만과 1950년대 국무총리 겸 외무부장관을 지낸 변영태, 그리고 시인 변영로 등 자신의 길에서 최고에 오른 3형제는 '부평삼변'이라 불린다. 이 중 변영태는 아들 3명이 모두 일찍 죽었고, 변영로의 5형제 중에선 2명이 생존해 있지만 한명은 미국에 사는 등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부평삼변의 향제터에 살고 있는 변영만의 맏손자 변호달(61)씨를 통해 조금이나마 변영로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수주 할아버지는 굉장히 특이한 분이셨다”며 “워낙 주위에 지인들이 많아서인 지 사실 우리 같은 어린애들은 잘 상대도 해주지 않으셨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변호달씨는 “세분 중 영태 할아버지가 가장 가정적이었고, 두분은 그렇지 않았다”며 “우리 할아버지와 수주 할아버지는 집에서 죽이 끓는 지 밥이 끓는 지도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술에 얽힌 인생을 소탈하게 써내려간 변영로의 수필 '명정(酩酊) 40년'의 내용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변영로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는 게 그의 어린시절 기억이다. 그는 “워낙 술을 많이 드셨던 분이라 술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암에 걸려 외국에서 수술을 받은 뒤 얼마있다 돌아가셨다”고 변영로의 사인에 대해 설명했다.
향학열이 굉장히 뜨거웠던 가문이 자랑스럽다는 변호달씨. 그는 “대대로 여기서만 살아서인 지 이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며 “조상들의 얼이 서려있는 이곳을 계속 지키며 살겠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chkim@kyeongin.com>김창훈기자·ch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