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신이가, 사람이가?”

홍탁집에 들어서자 주인 노파는 피에로 분장을 한 내 모습에 놀랐는지 눈곱 낀 눈을 비비며 뒷걸음질쳤다.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면서 혀끝을 차는 후렴구는 잊지 않았다.

골목입구에 슬레이트 가건물로 세워진 가리봉 홍탁집. 그을음 낀 형광등 밑에 매달린 끈끈이에는 파리들이 새카맣게 붙어 있었다. 기름때가 눌러 붙은 '가리봉동 제 9회 주민체육대회 기념' 거울 옆에 매달려 있는 낡은 선풍기는 후텁지근한 바람을 내뿜고 있었다.

“사나놈이 가시나처럼 분칠은… 쯧쯧.”

노파는 쉰 깍두기와 사발을 상위에 챙겨놓고는 행주치마에 침을 적셔 내 얼굴을 문질러 댔다. 치마에 배어 있는 쉬지근한 냄새와 입냄새에 고개를 돌렸지만 노파의 억센 손을 빠져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판또마임 할라꼬 분장한 거 아입니꺼. 할매는 우째 예술도 이해 못하는겨?”

가게 앞에 스쿠터를 세우고 뒤따라 들어온 덕구 아저씨는 노파에게 붙잡혀 있던 나를 자리에 앉히고 한마디 던졌다. 양 볼이 퀭하니 들어간 아저씨는 마른 체격에 어깨까지 굽어 더 왜소해 보였다.

“예술은 무신 얼어직일 예술….”

조리대로 몸을 돌리던 노파가 한마디 쥐어박았다. 덕구 아저씨는 얼굴에 흐르는 땀은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목에 걸린 카메라를 풀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찍히기나 할까라고 의심한번 가져볼만한 낡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였다. 카메라를 대충 살폈는지 그제야 덕구 아저씨는 땀을 훔쳐냈다.

“우째 이리 덥노. 삶아 낸다 삶아내. 비라도 시원케 한 줄기 쏟아져 부리제.”

나는 선풍기의 방향을 덕구 아저씨에게 고정시켜 주었다. 미지근한 바람에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휘날렸다.

“니 방세는 언제 낼끼고? 벌써 다섯 달이다. 낸도 살아야 안카나?”

홍어회를 무치던 노파는 한 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토끼장같은 월세방 주인이기도 한 노파는 작정을 한 듯 밀린 방세를 독촉했다.

“할매요. 쪼매만 기다려 보소. 사진 하나만 근사하게 나오면 대박이란 거 아입니꺼.”

덕구 아저씨는 손톱에 낀 비듬을 다른 손톱으로 빼내며 너스레를 떨었다.

“쯧쯧… 미친 놈. 그놈의 얼어직일 예술은… 예술이 밥 먹여 주더냐?”

“할매 낼 모레 관 뚜껑에 못질할 껍니꺼? 기둘러 보소. 내 이 심덕구가….”

덕구 아저씨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 불빛이 노파를 향해 번쩍 거렸다.

“뭐꼬? 응. 무슨 도깨비 지랄이고?”

플래시 빛에 놀랐는지 노파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방세 이야기를 접었다. 독하지 못한 노파는 매번 먼저 방세 독촉을 그만뒀다.

“자네. 내가 사진작가라는 거 아나?”

덕구 아저씨는 카메라가 뱉어 낸 인화지를 흔들며 말했다. 아저씨는 대학로나 여의도 공원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화장을 지우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싯적에 사막서 사진 찍었다는 거 야기했던가? 몬들어봤나? 내가 사하라 사막서 사진 찍었다는 거 아이가. 대단채? 잘라꼬 누워 하늘을 보면 쏟아지는 별에 다리 사이의 몽둥이가 꼿꼿이 서는 기라. 모래는 어떻고, 가시내 우유통 맨지는 거처럼 얼매나 부드럽다꼬.”

아저씨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켰다.

“가시내 젖통이나 맨져보고 그런 소리 하나?”

홍어무침을 소복이 담아 내온 노파가 덕구 아저씨의 말을 쥐어박았다.

“할매도 무신 소리를 그리 합니꺼. 그래도 낼 모레면 내도 쉰 아닌겨.”

“쉰이면 뭐하고 예순이면 뭐하노 이적까지 장가도 몬 간 놈이. 불알 두 쪽 차고 나왔시면 분통같은 가시내 한번 옆구리에 품어 봐야 안카나.”

노파는 옆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는 덕구 아저씨에게 잔을 채워주었다.

“내 말 안했습니꺼. 저는 예술이랑 살림 채렸다꼬.”

덕구 아저씨의 능글거리는 말투에 노파는 코끝을 씰룩거리며 홍어무침 한 점을 집어 아저씨 입 속에 억지로 넣었다.

“못난 놈, 말이 꽃방석이다. 지랄 말고 술이나 처먹어라. 니도 좀 팍팍 묵어봐라. 사내 자슥이 와그리 깨작거리노 복 없게시리.”

노파는 접시를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 나는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홍어 특유의 알싸함이 코 속으로 파고 들었다.

“불쌍한 놈, 에라 이 불쌍한 놈. 니 아배 정말 무심키도 무심타. 아들새끼 버리고 어데 그리 가버리노. 그래도 원망 말그래이. 오죽했시면 그랬겠나, 오죽 했시면….”

노파는 벌써 행주치마에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노파는 저글링 강 아저씨를 내 아버지로 알고 있었다. 저글링 강 아저씨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르고 씹어버린 생강 때문이었는지 눈물이 핑 돌았다.

“할매, 처녀적에 미인이라는 소리 마이 들었겠네.”

덕구 아저씨는 노파의 사진을 이리저리 보며 능청을 떨었다.

“니 또 헛소리 할끼고?”

노파는 사진을 빼앗고는 흘겨보며 덕구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