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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빈의 후손들은 인천 경제계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선, 서상빈의 아들인 서병훈은 1920년대 인천물산객주조합의 이사로 활약하며 일본인 기업주들에게 착취당하는 한국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또한 그는 대표적인 항일민족 단체인 신간회 인천지회의 간사를 맡는 등 항일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병훈의 아들 서정익은 일본 나고야공업학교 방직학과를 나온 뒤 동양방적 인천공장의 유일한 한국인 기사로 취직을 했다. 광복후 일본이 남겨두고 간 이 공장(적산공장)을 동일방직으로 재발족시켜 사주로 취임하는 등 사세를 확장해 갔다.
인천에 있던 수많은 적산공장 중 현재까지 운영해 발전시킨 것은 동일방직 뿐으로, 서정익씨의 공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63년 전국경제인협회 이사로 취임했고 1970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상무이사로 선임돼 한국 경제의 중추적 인물로 부상했다.
또한 그의 아들 서민석은 현재 동일방직 회장으로,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지난 3월 상공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국내 경제계의 큰 역할을 맡고 있다.
동일방직에 얽힌 노동문제를 차치하고, 개항 이후 인천에서 활약하던 사업가들 모두가 당대로 그친 반면 서씨 일가는 대를 이어 인천 경제에 기여한 바는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