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침분침

공장단지속의 창작공간 - '내건너 창작마을'을 오픈하며

   
  ▲ 이윤숙
(조각가·대안공간 눈 대표)
 
그동안 경작하던 밭의 일부를 창작공간으로 만들어 8명의 작가와 1명의 평론가가 입주하였다.

문화 인프라가 열악한 화성의 공장동네 가운데 새로운 예술 생산공장이 자리잡은 것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산좋고 물좋던 봉담 일대는 온통 난개발로 공장단지가 되어버렸다. 하기야 힘들여 농사지어서 살 수 없는 형편이니 앞다투어 제조장을 지어 세를 받는 편이 경제적으로 훨씬 나은 것이 사실이다.



산과 밭과 논으로 둘러싸였던 평화롭던 마을을 조립식 건물들이 차지하고 세곡리에 있는 연구실 주변을 제조장들이 포위하더니 고속전철이 생긴 이후 당하리 밭 근처도 구석구석 제조장이 늘어나고 공장들이 들어서서 고속전철 소음과 함께 공장의 기계소리가 마을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건너편 세곡리 윗마을이나 건달산에서 밤에 이곳 당하리나 태봉산을 바라보면 마치 '은하철도 999'처럼 허공을 기차가 빠른 속도로 가르며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 급변하는 주변 상황에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건지 아주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10여년간 흙 속에서 풀과 씨름하면서 땀흘려 경작한 곡식들을 나눌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고 자연과 생태,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늘어만 가는 공장들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넓은 장소로 집과 작업공간을 옮겼으면 하는 바람속에 시작한 집짓기 과정에서 혼자 쓰기보다 작업실이 없어 힘들어하는 몇 명과 함께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발전하여 전체를 공동 창작스튜디오로 만들게 된 것이다.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넓은 터를 최대한 활용하여 밭농사와 함께 사람농사도 지어보자는 속셈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땀과 노력, 더욱이 경제적인 부담이 무척 컸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었다. 따뜻한 마음으로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가는 것 같다.

당하리의 옛 이름이었던 '내 건너'를 빌려와 '내 건너 창작마을'로 이름을 지었다.

여느 공장들처럼 조립식으로 지어졌고, 새 것이 아닌 중고로 만들어졌지만 이곳에서 창작되는 작품들은 아주 신선하리라 생각된다.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쓰지도 않고 시류에 휩싸이지 않으며 치열하게 자기만의 작업세계를 펼쳐 나가는 건강한 작가들이 입주하였기 때문이다.

경수미(설치) 김수철(회화) 배수관(조각) 이우숙(회화, 설치) 이칠재(조각) 유지숙(영상) 최규조(조각) 황은화(회화, 설치) 김종길(평론)씨 등 이상 9명의 작가와 평론가가 생산해 내는 작업과 생각의 가치는 다른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제품과는 비교가 안될 엄청난 에너지를 품어내리라 기대한다.

미술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별적인 작업이지만, 중국의 따산즈나 소자촌 등에서 보았듯이 뭉쳐있을 때 그 힘은 몇 배로 배가된다.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때론 경쟁도 될 것이며 자극도 될 것이다. 고속철의 소음과 속도감 속에 쉬지 않고 가동되는 공장의 기계소리를 들으며 긴장감있는 작업들이 펼쳐질 것이다.

요즘, 전 세계 미술시장을 뒤흔드는 중국의 작가들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기반시설과 문화인프라 토대 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묵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탄탄하고 다양한 문화인프라를 하나하나 구축해 나가야 할 때이다.

/이 윤 숙(대안공간 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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