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동지역을 가다

호수엔 순수한 영혼이 잠기고 열차엔 동토의 온기가 숨쉰다
입력 2007-08-29 19:00
지면 아이콘 지면 2007-08-31 0면
   
  ▲ 오르타농장 주변에서 찍은 원정대 기념사진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진 붉은 제국, 매서운 눈보라가 사계절 계속해서 몰아칠 것만 같은 동토의 나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4대강국의 하나였지만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인해 실제적인 지리상의 거리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더욱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 러시아. 세계 제일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북극곰 러시아' 동쪽의 얼어붙은 땅에 국립 한경대학교 학생 및 교직원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박7일동안 대장정을 떠났다.

경인일보에서는 한경대 학생들이 러시아 극동지역(바이칼호수 중심)에서 펼친 문화·학술 교류 및 자원봉사 활동등의 모습을 기자가 동행해 창간기념으로 게재한다. <편집자주>

■대장정의 첫발 /8월17일
연일 장맛비가 쏟아지던 하늘이 이날 만큼은 맑고 높은 가운데 8월 17일 인천국제공항. 한경대 학생, 교수· 임직원 및 의료진 등 총 95명으로 구성된 '제2회 한경대학교 러시아 대장정단(단장·권기준)이 인천공항을 통해 약 4시간 비행 후 러시아 이르쿠츠크 공항에 도착했다. 



   
  ▲ 벨로고르스크 주정부 예술단원들이 원정대 환영행사를 해주고 있다.  
이르쿠츠크는 인구 67만명, 면적 306㎢의 도시로 우리나라와 시차가 없다. 그 유명한 바이칼호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앙가라강과 이르쿠트강의 합류점이 되는 이르쿠츠크주도이다.

새벽 2시 이르쿠츠크 공항에 도착하자 학생들이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학생들의 외마디 비명이 들려온다. 명색이 국제공항이라는 곳의 화장실에 소변기는 없고 좌변기만 달랑 하나 있다. 게다가 물도 내려가지 않았다.

길었던 입국수속을 끝내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버스 3대가 원정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버스는 대우·현대 등 모두 국내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뭉클함이 느껴진다. 고국을 떠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르쿠츠크는 심한 대륙성 기후로 겨울 평균기온이 영하 28도라지만 원정대가 도착한 날은 섭씨 30도를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원정대는 욜라츠카(목조빌라)에 짐을 내리고 러시아에서의 첫 밤을 맞이했다. 앞으로 펼쳐질 낯선 세계의 흥분과 설렘에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바이칼 호수를 만나다 / 8월 18일
   
  ▲ 이르쿠츠크 중앙시장엔 언제나 사람들의 활기가 넘친다  
대장정 이틀째.
버스를 타고 선착장에 도착해 유람선을 탔다. 60분 정도의 항해끝에 드디어 바이칼 호수가 눈 앞에 펼쳐진다. 이번 대장정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바이칼 호수. 전 세계인들의 구애를 받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 바이칼이라 생각하니 이 광경을 표현할 말이 순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바이칼호는 터키어로 '풍부한 호수'라는 의미로 담수호로서는 세계 최대의 크기와 수심, 오래된 역사를 가진(약 3천만년) 세계 제일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호수다. 수량은 바이칼해와 5대호에 필적하고, 지구 담수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장대한 스케일의 호수다. 또한 이곳에 살고 있는 생물의 약 70% 정도가 고유종으로 갈라파고스와 마다가스카르등과 '진화의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일컬어진다. 1996년에는 호수와 그 주변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길이가 636㎞, 최대폭이 79.4㎞로 지상에서 내려다보면 길고 좁은 협곡같은 호수로 보여진다.

날이 흐리고 호수 주변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싸늘했다. 이제는 짧은팔 보다는 긴팔셔츠가 어울릴 것 같았다. 호수 주변에서는 러시아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수영하기에는 추운 날씨라고 생각했는데 '시베리아의 정기' 를 받아서 일까 이곳 사람들은 날씨에 개의치 않고 수영하는 모습이었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니 한국에서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생활한 스트레스 근심 걱정이 모두 없어지는것 같다. 바이칼 호수의 영혼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바이칼 호수 구경을 끝내고 근처에 있는 바이칼 박물관을 관람했다. 이곳은 바이칼 호수에 살아있는 생물들의 표본과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며, 또한 동식물들의 보호와 새로운 생물들을 보전·연구하는 유명한 바이칼 호수 늪 연구소가 바로 옆에 있다.

한편 이곳에서는 바이칼 호수에 살고있는 생물 중, 특히 유명한 바이칼 바다표범이 원정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다가 주서식지인 바다표범은 그 학술적 가치가 무한하다고 한다. 바다표범은 바이칼 호수에 유일하게 생식하고 있는 포유류다. 바이칼 호수는 1년중 반 이상이 얼음에 둘러싸여 있기에 좀처럼 볼 수가 없으며, 여름 한때에 잠깐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 바이칼호수 주변에 있는 전통 축산물을 판매하는 '오물'시장  
바이칼호수 주변 곳곳에는 이동식 생선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바이칼 호수의 명물인 훈제생선 '오물'을 맛볼 수 있다. 옛날에는 오물을 파는 시장이 많았으나 러시아 당국에서 바이칼 호수 주변 정리를 위해 시장을 철거해 오물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지금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바이칼 호수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원정대는 '딸찌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딸찌 박물관은 러시아 전통 민속 목조 박물관으로 18세기 러시아 성채, 학교, 교회 등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박물관을 보면 당시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눈앞에 펼쳐 보여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정돈이 잘 돼 있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원정대는 러시아 전통 음식인 샤슬릭을 맛보기 위해 음식점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음식점에 도착하자 종업원들이 원정대를 환영하면서 빵과 소금을 준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빵과 소금을 대접한단다. 강행군을 해서인지 원정단 모두는 뱃속에서 허기짐을 느끼고 있었다.

샤슬릭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양념한 돼지고기를 큰 꼬치에 끼워 숯불에 구워먹는 것. 샤슬릭을 한 입 먹는데 입에서 살살 녹았다. 맛은 한국의 돼지갈비와 비슷했다. 원정단은 '한접시'추가를 외쳤지만 한 사람당 꼬치 하나만 나왔다. 모두들 아쉬워하는 눈치다.

저녁을 먹으면서 공연단의 공연이 이어졌고 원정대는 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며 추억을 만든 후 숙소로 돌아와 이르쿠츠크에서의 마지막날을 보냈다. 이르쿠츠크에는 지금 백야현상이 일어나 밤 11시가 넘어야 해가진다. 해가 지고 하늘을 보니 이르쿠츠크의 하늘에 별똥별이 떨어지는 등 유난히 많은 별들이 보인다. 과연 저 별들을 지금 한국에서도 볼수 있을지….

■46시간의 추억만들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다 /8월19,20,21,22일
이르쿠츠크를 떠나는 날 원정대는 이르쿠츠크의 중앙시장과 앙가라 강 관람에 나섰다.

중앙시장은 2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1층은 식품판매장, 2층은 의류품을 팔고 있는 대형시장이다. 다량의 의류품들은 도매시장처럼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싱싱한 식료품들이 매일 거래되고 있는 활기찬 도심의 시장이다.

특히 이곳에는 고려인들이 김치, 파전 등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얼굴과 피부색은 분명 우리 한민족인데,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다. 우리의 불행한 역사만 없었더라도 이들 역시 우리와 함께 대한민국 이라는 영토안에서 같이 생활할수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자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중앙시장에서 빵을 사먹는데 갑자기 반가운 한국말이 들린다. 그러나 억양은 분명히 다른 한국말이었다.

   
  ▲ 1846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목조건물 성 니콜라스 카야 교회.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남한에서 왔습네까?" "네 그렇습니다. 북에서 오셨나요." "그렇습네다." 그는 원정대와 같은 얼굴, 피부색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김인수(가명)라고 소개한 그는 현재 이곳에서 벌목공으로 5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사람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고 했다. 우리도 반갑기는 마찬가지였다. 비록 조국이 휴전선을 사이에두고 생활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우리는 모두 단군의 울타리에서 한민족으로 어울릴수 있었다. 시장을 나오면서 그에게 통일이되면 꼭 만나자는 덕담을 건네자 그도 꼭 다시 보자고 했다. 통일이여 부디 빨리 오기를….

중앙시장에서의 반가움을 뒤로하고 원정대는 앙가라 강과 알렉산드르 3세 동상을 구경했다. 알렉산드르 3세 동상은 원래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완공을 기념해 이 위대한 철도의 건설을 결정한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알렉산드르 3세 동상 아래표면에는 시베리아 발전에 공을 세운 인물들의 고부조가 새겨져 있고, 동상 동쪽으로는 쌍두 독수리가 달려있다. 이 쌍두 독수리는 발톱으로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에게 황제의 자리를 상속한다는 칙서를 들고 있다.

앙가라강은 바이칼호에서 유일하게 흘러나오는 강이다. 길이가 약 1천800㎞에 달하며, 계속가면 예니세이강에 이르게 된다. 수온이 8도 정도가 되는 아주 차가운 강으로 가끔 해수욕을 즐기는 러시아인들을 볼 수있다.

강의 입구에 이르면 '샤먼 바위'라고 불리는 유명한 바위가 있다. 오래된 전설을 가진 이 바위는 앙가라강이 예니세이강으로 흘러들어가기 전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200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인데, 예전에 샤먼바위에는 죄인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 하룻밤 동안을 그대로 방치시킨후 만약 그다음날 살아남으면 무죄를 선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내려온다. 원정대가 앙가라강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통에 가이드가 통제를 하지 못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 원정대가 기차를 타고 도착한 벨로고르스크역 앞에 세워진 동상.  
 
원정대는 이르쿠츠크역을 출발, 벨로고르스크역까기 가는 열차 대장정길에 올랐다. 소요 시간은 무려 46시간. 한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거의 이틀이라는 시간을 비좁은 열차 안에서 식사와 잠, 간단한 개인정비 등을 모두 해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원정대는 쿠페(침대칸 열차) 칸에 삼삼오오 모여 그동안의 원정대 일정을 돌아보는 한편, 대원들간 친목을 다지는 소중한 시간으로 활용했다. 일정의 절반이 흘러간 지금, 원정대는 극동의 땅 러시아에서 옛날 선조들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뒤따라 가고 있었다. 열차는 에어컨 시설이 좋지않아 낮에는 무더위와 싸워야만 했다.

46시간의 열차 여행을 끝내고 원정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르타 농장(농장주·요바)을 찾았다. 요바(53)의 농장은 1천500만평에 이르는 대농장으로 콩,귀리, 보리, 밀 등 한국에 보낼 유기농 사료곡물을 재배하는 곳이다. 이곳 농장에는 한경대 출신인 박순철(52)씨가 유기농 사료곡물을 싼 가격에 한국으로 들여와 유기농 사료로 가공한 뒤 국내 축산 농가에 보급한다.

마침 원정대가 도착한 이날은 농장주인 요바씨의 생일로 원정대와 요바씨는 케이크를 같이 자르며 우정을 나눴다. 원정대는 이곳 농가에서 하루 야영을 했다. 저녁이되자 시베리아의 추운 기운이 느껴졌다. 원정대 모두 잠을 자면서 추위에 떨어야했다. 그러나 추우면 어떠하리, 농장에서의 하루는 원정대 모두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했다.

   
  ▲ 딸찌 박물관에서 생활하는 말. 이 말을 타고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다.  
■북극곰이여 안녕! / 8월23일

농장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원정대는 다시 16시간 기차를 타고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했다. 하바로프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 크기로,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인구 70만명의 하바로프스크는 트란스-시베리아 철로가 지나는 하바로브스크 지역의 경제, 교통, 행정, 문화 중심지이다.

공항에 가기전 아무르 강을 구경했다. 높은 절벽아래로 흐르는 아무르강(Amur River)을 보고 있으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무르 강을 뒤로하고 공항에 도착한 원정대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후 1시30분께. 인천공항 통관 절차를 거친 원정대의 6박7일간의 일정은 끝이났다.

권기준 단장은 "이번 원정이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며 "학생들이 이번 원정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학교 생활도 잘 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너무나 힘들고 고된 일정이었지만, 먼 이국땅에서 경험한 추억이 95명의 원정대 각자의 가슴속에 영원히 자리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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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원기자

sjw@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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