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범(미술평론가) |
이렇듯 사진의 기록적 속성이 사회 전반에 횡행하고 있지만, 미술계(사진계)에서는 사진의 기록적 속성은 고리타분한 명제가 된지 오래다. 사진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제 사진의 문제는 어떻게 찍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만드는가의 문제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작가들은 사진 속 인물 또는 상황을 연출하거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제거한다.
인천 혜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권순학-HYPER SPACE SUB'전 역시 '만드는 사진'의 영역에 포함된다. 그러나 권순학의 사진은 단순히 '만드는 사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먼저 그의 사진은 '컴퓨터 사진몽타주'(Computer Photomontage)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카메라에 일정한 공간 전체의 모습을 포획하지 않는다. 그는 일정한 공간에서 셔터를 누르면서 전동차의 구석구석을 기록한다. 이것은 실상 사람의 눈이 공간 전체를 한 번에 포획하지 못하고 눈으로 이곳을 기억하고, 저곳을 기억하며 그것의 전체를 파악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권순학은 카메라가 본 기록하는 시선이 아닌 우리의 눈이 기록하는 시선을 따라가고 있다. 권순학은 이것을 가지고 전체적인 공간을 형상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서 있는 세계와는 다른 공간으로 구성된다. 카메라에 인간의 시선을 투여하고 그것을 인간이 조합하듯 컴퓨터로 다시 조합하고 있지만, 그것은 현실과 더 멀어진 가상세계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공간은 왜곡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시간이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으로 변모해 있다. 이것은 한 작품 안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권순학 사진의 또 다른 지점은 현재 찍히고 있다는 것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사진은 마치 요즘 젊은 작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게 공간에 주목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인물은 배제되고 공간만이 남아서 공간의 웅장함 또는 공간의 다시 읽기가 가능한 텍스트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에 작은 틈새가 있다. 유리 또는 반사체가 그것이다. 거기에는 카메라의 플래시가 또는 촬영하고 있는 과정 또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조작된 카메라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어야 하는 사진보다 더 실제적인 모습이다. 권순학은 이러한 요소들을 작품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서 어느 것이 실제이고, 환각인지 모를 자신만의 공간을 형상화 한다. 이것은 작가가 말하고 있는 "가짜와 진짜, 진짜와 가짜의 줄다리기"의 산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간혹 환각의 세계를 극도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들이(마주하고 있는 의자에 사람이 누워 있는 장면, 디지털 카메라에 잡힌 총을 입에 겨누고 있는 여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승강장에 걸터앉아 있는 사람 등) 오히려 환각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가도 알고 있듯이 실재도 환각도 우리 가까이에 있다.
<저작권자 ⓒ 경인일보 (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