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찬 (농진청 소득기술과 농촌지도관)
최근 고유가에 온 나라가 아우성이다. 서민 경제에 밀접한 밀가루 값이 지난해 5월 기준으로 1년 새 68%나 뛰었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다. 공공기관에서는 차량 2부제 시행, 에어컨 덜 켜기, 가로등 절반 끄기 등 에너지 절감 운동이 한창이다.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에 어쩔 줄을 모른다.

하긴 2차오일 쇼크 때(1979~1980) 배럴당 42달러 하던 기름값이 올 들어 140달러를 웃돌고 있으니, 지구촌이 조용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5천만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우리 농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계속되는 농자재 값 인상으로 늘어나는 영농비 부담에 농업인들은 그저 울상이다. 솟구치는 기름값에 시설재배 농가들은 망연자실이다.

이대로라면 농업인들은 난방재배 작물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겠다. 난방재배 면적이 일반재배로 전환 되면, 같은 시기에 출하가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이는 농가 수취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난방용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에 기름을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원 투입이 시급하다. 값 싸고, 얻기 쉽고, 대자연을 해치지 않는 새로운 에너지 말이다. 획기적인 농업용 대체에너지가 금방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나름대로 경영비를 줄일 방법은 있다. 지중난방, 수막재배, 축열물주머니, 보온커튼 등 기존에 보급된 에너지절감 기술을 최대한 이용해 보는 거다.

최근에 개발된 에너지 절감 신기술들의 난방비 절감 효과를 보면, '순환식 수막보온시스템'은 난방비를 약 67% 줄여준다. '지열이용 냉난방시스템'은 시설화훼에서 78%, '버섯 재배사 열회수형 환기장치'는 83~90%, '수평권취식 다겹 보온커튼'은 46%를 각각 절감해 준다.

마침 정부에서는 에너지 절감 효과가 78% 이상인 '지열 히트펌프 냉난방시스템'을 농가에 보급하고자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검토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얼마 전 충북 청원 지역을 다녀왔다. 2천640㎡의 시설하우스에서 캠벨얼리 포도를 재배하는 농업인 한분을 만났는데, 하우스 안에 축열물주머니를 설치했다는 그는 "전에는 겨울 동안 15~20드럼의 기름을 땠는데, 비닐하우스에 축열물주머니를 넣은 이후로는 5드럼 정도면 된다"고 했다. 맑은 날이 많을 경우 축열물주머니만으로도 67~75%의 난방비 절감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요즘 아인슈타인 박사를 떠올리면서 이런 저런 공상에 빠진다. 대자연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발견되는 공상이다. 지구 전체가 북극과 남극을 가진 커다란 자석이라는데 지구자석을 에너지화할 수는 없는 지, 태엽시계의 진자운동에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비밀이 숨어 있는 건 아닌지, 물레방아에 물 대신 자기장을 이용하면 어떨 지, 이런 소박한 공상이다.

최근 네덜란드에서는 델프트 공대 연구진들이 하늘 높이 연을 띄워 전기를 얻는 '연 발전' 장치를 고안해 곧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바로 그거다. 우리 농촌의 비닐하우스에도 연 발전 장치 같은 것을 다는 거다. 순전히 바람의 힘으로 전기를 얻는 거다.

국제 원유 값은 마냥 오를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빨리 국가차원에서 농업용 대체에너지 개발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전담 연구기관이 지정돼야 한다. 국내 연구기관도 좋고, 공과대학도 좋고, 민간기업도 좋겠다.

농산물 수입개방이 진전되면서, 우리 농산물의 약점은 가격 경쟁력에서 외국산에 밀린다는 것이다. 생산비를 줄여야 하는데, 지금 같은 고유가 시대에서는 요원하기만 하다. 대체에너지 개발이 더욱 절실해지는 이유다.

지난 1972년, 옛 소련의 흉작으로 촉발됐던 곡물파동을 기억하자. 자국민의 생명줄인 식량, 언제든지 무기화가 가능한 식량, 국가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식량이라면, 우리나라도 시름에 빠진 농업·농촌부터 살려놓고 볼 일이다. 제2의 녹색혁명을 대체에너지 개발에서 찾자. 우리 농촌의 비닐하우스에도 '연 발전' 장치를 달자. 유럽의 선진국들은 하나같이 농업 강국임을 기억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