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김민재기자]
# 저어새의 편지
안녕 나는 저어새야. 이제 알에서 깨어난 지 3달이 좀 지났어.
내가 태어난 곳은 사람들이 저어새섬이라고 부르는 인천 남동유수지의 인공섬이야.
이곳은 원래 저어새들이 송도갯벌 가는 길에 쉬어가는 곳이었는데 몇몇 저어새들이 작년부터 둥지를 틀기 시작했단다.
우리 부모님은 강화도 근처의 무인도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적 놀던 갯벌이 점점 사라져서 이곳에 자리잡으셨어.
나는 이제 가을이 되면 따뜻한 남쪽으로 떠날거야.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내년 봄에 다시 돌아올거야.
그땐 지금보다 많은 친구들을 만났으면 좋겠어.
하지만 이젠 남아있는 송도갯벌도 매립된다고 해서 모두들 걱정이 많아. 송도갯벌까지 사라지면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 거지?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
■ 남동유수지 저어새섬을 아시나요?
인천 송도신도시와 남동공단, 승기천 하류 사이에 위치한 남동유수지. 조석간만의 차이로 인한 영향과 만조시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습지다.
냄새나는 물이 고여 있고, 쓰레기로 가득한 이곳에는 작은 인공섬이 하나 있다.
이 섬은 그동안 송도갯벌에 먹이를 구하러온 저어새와 야생 조류들이 쉬어가는 장소였지만, 2007년부터 재갈매기들이 하나 둘 둥지를 틀기 시작했고, 2009년부터는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도 본격적인 번식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곳을 '저어새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저어새가 둥지를 틀자 환경단체들과 야생 조류에 관심있는 시민들은 '인천저어새네트워크'라는 모니터링단을 만들어 저어새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루하루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둥지마다 번호를 매기고 저어새마다 이름을 지어줬다. 이 모든 기록은 사진과 동영상과 함께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spoonbill-island)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암수 저어새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 둥지를 놓고 재갈매기와 다투는 모습, 심지어 바람을 피우는 저어새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기록했다. 둥지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 하나에도 일희일비했다. 일종의 육아일기인 셈이다.
이들은 남동유수지 인근 숲에 천막을 치고 저어새 홍보관을 만들었다. 인천지역 학생들은 이곳을 찾아 자연이 만들어 준 생태교실에서 자연의 소중함을 배웠다.
지난해 4월 인공섬의 저어새 번식을 처음 확인한 인천저어새네트워크 김보경 회원은 "저어새의 번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환경단체와 여러 시민들이 함께 모니터링단을 구성하게 됐다"면서 "이후 송도갯벌 매립을 반대하는 활동과 이곳을 방문한 시민들에게 저어새섬을 알리는 일 등을 하고 있다"고 모니터링단을 소개했다.
기대와 우려가 함께 했던 번식 첫 해, 대부분의 저어새가 실패를 맛보았다. 둥지 재료가 부족하고 둥지터가 완만하지 않아 다수의 알이 굴러떨어진데다 폭우로 인해 일부 둥지가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2009년 한해 24쌍의 저어새가 이곳에 둥지를 틀고 번식을 시도했지만 4쌍만이 번식에 성공해 6마리의 새끼가 태어나 둥지를 떠났다.
이에 인천환경단체와 시민들은 남동유수지에 모여 올해 3월 7일 나뭇가지, 마른풀 등 둥지 재료를 모아 저어새섬에 미리 옮겨놓고 둥지터를 완만하게 고르는 등 저어새 맞을 준비에 정성을 쏟았다.
당시 참여했던 시민들은 "번식을 위해 사람이 개입하는 것이 결코 옳은 것 만은 아니지만 자연이 아닌 인공섬이기 때문에 보수를 결정하게 됐다"면서 "아마 섬을 보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했다.
3월 20일 드디어 저어새가 남동유수지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모니터링단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천막을 치고 번식을 기다렸다.
열흘 정도 지났을까. 저어새들이 쌍쌍이 모여앉기 시작하더니 둥지 틀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노란색의 번식깃이 짝짓기를 예견하고 있었다. 이윽고 저어새 부부가 알을 품었다는 소식과 새끼 저어새가 빨간 부리를 드러내며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도 번식에 성공한 것이다.
6월말 기준으로 27개의 저어새 둥지 중 15개 둥지에서 새끼 저어새 34마리가 태어났다. 부화에 실패한 둥지는 5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둥지는 알을 품고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가까운 승기천 하구의 갈대밭, 외암도 수로, 고잔 갯벌, 아암도 갯벌, 시화호 앞 갯벌 등으로 날아가 먹이를 구한다.
8월 15일 현재 번호가 부여된 저어새 둥지는 31개, 확인된 새끼 저어새만 50~60마리 정도라고 한다. 지난해에 비해 10배 이상의 새끼 저어새가 태어났다. 당시 남동유수지에서 만난 모니터링단 회원들은 머릿속에 둥지 번호와 개체수를 꿰고 있었다.
인천저어새네트워크는 저어새섬의 둥지상황과 개체수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야생 조류 전문가 이기섭 박사를 중심으로 인공위성 위치 추적이 가능한 가락지를 저어새 발목에 달아 과학적으로 모니터링한다. 색색의 가락지마다 일련번호를 다르게 부여해 저어새의 이동 경로와 먹이활동 등을 세심하게 체크할 수 있다. 이 가락지는 월동기를 보내고 인천으로 다시 돌아오는 저어새가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디에서 자란 저어새인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된다.
저어새섬은 저어새 뿐만 아니라 재갈매기, 왜가리, 민물가마우지, 중대백로, 넓적부리오리 등 수많은 야생 조류들의 삶의 터전이다.
특히 재갈매기는 저어새섬의 원래 주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동유수지 주변에서는 도로공사가 한창이고 남동공단의 폐수가 남동유수지로 유입되고 있다. 게다가 저어새의 주된 먹이 공급처가 되고 있는 송도갯벌(11공구)의 매립이 오는 10월부터 시작돼 내년에도 저어새들이 남동유수지에서 올해와 같이 번식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 인천 갯벌과 저어새
송도 11공구. 이곳은 인천의 마지막 갯벌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곳이다. 반대로 말하면 송도 개발의 마침표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저어새 한마리가 날아와선 냄새나는 남동유수지 인공섬에 둥지를 틀었다. 아무말 없이 찾아왔지만 존재감만은 확실하다.
저어새는 매년 봄 우리나라에 돌아올 때마다 줄어드는 갯벌을 보면서 올해는 어디에 둥지를 틀어야하나 고민했을 것이다. 저어새는 결국 도심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저어새 섬은 갯벌 보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고 반대편에 선 사람들에겐 무조건적인 개발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인천저어새네트워크 회원들은 "사람이 없는 무인도에만 살던 저어새가 오죽 갈 곳이 없었으면 이렇게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 둥지를 틀 생각을 했을까"라며 도심속 저어새를 반기면서도 안타까워했다.
3월이면 찾아오는 우리나라의 저어새 대부분은 강화·김포 갯벌의 무인도에서 번식해 물댄 논과 갯벌에서 먹잇감을 구해 왔다.
하지만 이곳 갯벌이 점차 매립되면서 먹잇감이 부족해지고 농약을 친 논에서는 더이상 먹잇감을 구할 수 없게 되자 멀리 송도갯벌까지 넘어와 먹잇감을 구해갔다.
지난해 가을 이기섭 박사가 전국의 저어새를 동시 모니터링한 결과, 발견된 저어새의 약 60%가 강화남단, 교동도, 볼음도 등 강화 일원의 갯벌과 영종도 등지에서 발견됐다. 10%는 송도갯벌에서 발견됐다. 인천시 행정구역에만 70%의 저어새가 살고 있다.
저어새의 생존집단은 최근 10년간 꾸준히 증가해 2천여마리로 늘었다고는 하지만 정작 이들을 부양할 수 있는 갯벌은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08년 12월 기준 우리나라 갯벌의 면적은 5년전보다 60.8㎢가 감소한 2천489.4㎢다. 특히 인천 갯벌은 2003년 737.1㎢보다 33.2㎢ 감소한 703.9㎢로 조사됐다. 인천·강화조력발전소와 송도 개발로 인해 갯벌은 앞으로도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6월 강화군이 주최한 '강화갯벌의 현명한 이용과 저어새 보전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이기섭 박사는 "올해는 미리 저어새 맞을 준비를 해서 번식률이 증가했지만 내년도 올해처럼 활발할진 모르겠다"면서 "먹이터인 송도갯벌이 사라지면 저어새는 갈 곳을 잃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저어새들은 번식지 주변의 갯벌을 먹이터로 이용하며 번식이 끝나고 나서도 3개월 이상 머물며 새끼를 돌본다고 한다. 남동유수지 저어새섬에 번식하는 새끼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송도11공구 갯벌보전이 필수라는 이야기다. 저어새뿐 아니라 검은머리갈매기, 쇠제비갈매기, 검은머리물떼새 등 다른 야생 조류의 개체수 감소도 예상된다.
■ 자연이 주는 선물 '생태관광'
환경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저어새의 확대와 보전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 송도갯벌과 저어새섬을 생태관광지로 조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저어새섬은 접근이 어려운 서해안의 무인도와는 달리 망원경 등 기본적인 장비와 부지런함만 갖추면 저어새 성장의 전 과정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연수구와 남동구 남단에 위치한 저어새섬은 인천지하철 1호선 동막역에서 도보로 10분이면 닿는 거리라 접근성이 뛰어나다. 서울 도심과도 불과 40㎞ 떨어져 있다.
특히 번식지 주변에 이미 숲이 조성돼 있어 별도의 시설물없이 탐조가 가능한데다 섬과의 거리가 200m에 불과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지난 3월 남동유수지에서 '꼬마 새박사'라는 윤주영(청량초 6)군을 만났다. 평소에 어머니와 같이 야생조류 탐조를 나갈 정도로 새를 좋아하는 윤군은 3년전 어린이날 이곳에서 처음 저어새를 발견했다.
윤군은 "저어새는 최고의 어린이날 선물이었죠. 그 저어새가 이젠 저어새섬에 둥지를 틀고 새끼까지 낳았어요. 그런데 지금 송도갯벌이 점점 없어진다고 해서 걱정이에요"라고 했다.
생태관광지 조성이 진행된다면 저어새 외에도 자연이 주는 또다른 선물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같은 생태관광지 조성은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천시는 송도갯벌과 습지 보호를 위해 송도6·8공구 2.5㎢와 11공구 3.6㎢를 야생조류 대체서식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서식지가 멸종 위기 조류들의 충분한 보금자리 역할을 하기엔 면적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송도11공구 매립은 아직도 인천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해답이 있다"
日규슈 이즈미시 年 50만명 탐조객 발길… 美 오하이오주립대 공원 교육자원 활용
정부의 주도로 야생조류 보호와 함께 생태관광지를 조성한 사례는 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두루미 월동지역인 일본 남단 규슈의 이즈미시는 1960년 개체수가 400여마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먹이주기 활동을 통해 개체수가 1만2천마리까지 증가했고, 지금은 두루미를 보기 위해 매년 평균 50만명의 탐조객이 방문하고 있다.
또 대만 타이난시 쳉원습지는 대만 정부에서 저어새 보호구역으로 지정, 매년 30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매년 10만명이 방문하는 홍콩 마이포 보호지역도 저어새 월동지 보전을 위해 홍콩 정부가 200만달러를 들여 매입, WWF(세계야생동물기금협회)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인천녹색연합 장정구 사무처장은 "람사르 총회를 계기로 경상남도는 우포늪과 순천만습지생태관광을, 환경부·문화관광부·산림청에서는 걷는 길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인천도 송도갯벌과 남동유수지를 생태관광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국제저어새보호단체인 SAVE인터내셔널은 우리나라를 방문해 저어새 섬과 송도갯벌을 둘러보곤 "인천시는 갯벌 매립을 중단하고 송도 전체를 자연과 녹색개발이 공존하는 '생태디자인 도시'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미국의 오하이오 주립대 습지 연구 공원과 같이 습지를 교육자원으로 적극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인천시는 송도에 많은 외국 대학을 유치하려하지만 습지를 교육 도구로 활용하려는 계획은 없다.
또 시민들의 야생조류 탐조와 연구 용도로 탐조대와 인공섬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제저어새보호협회에 따르면 미국 주 연방정부는 1996년부터 수백억달러를 들여 매립된 습지를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중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불확실하다. SAVE인터내셔널의 랜디 헤스터 교수는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인천을 떠났다.
"인천은 아직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
▶저어새(Black faced spoonbill·천연기념물 205호,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Ⅰ급)란?
황새목 저어새과에 속한다. 부리가 길고 아래로 휘어진 따오기와 유연관계(생물의 분류에서, 발생 계통 가운데 어느 정도 가까운가를 나타내는 관계)가 깊다.
저어새는 몸이 흰색이고 부리가 주걱처럼 넓고 긴 것이 특징이다. 영어 명칭이 검은 얼굴인 것처럼 눈 주변에 깃털이 없고 검은색 피부로 덮여있다. 일부일처로 생활하며 번식이 끝나면 유대 관계가 약해지나 다음 해 다시 만나 번식하는 경우도 많다. 개체수는 2천마리 내외. 번식기는 한국의 서해안 무인도에서, 월동기는 대만이나 홍콩, 중국 남부, 일본에서 보낸다.
<저작권자 ⓒ 경인일보 (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