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산(茶山)의 청렴(淸廉) 따라잡기

   
▲ 박원철 경기도 청렴대책반장
다산의 18년 유배생활은 그의 삶에서 행과 불행의 양가성을 갖는다. 가족과 격리된 채 정치적인 기회를 박탈당한 오지 유폐의 삶은 감내하기 어려운 쓰라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오로지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유배가 없었다면 '목민심서'도 '여유당전서'도 없었을 터이다. 18년 유배는 고스란히 그의 빛나는 학문적 자산이 되었다.

다산이 살았던 시대는 조선왕조가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옮아가는 과도기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당쟁으로 얼룩진 정치상황, 임진왜란 이후 문란해진 토지정책 등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나라에서는 그런 농민을 상대로 더욱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다산은 현감 군수 등을 두루 지냈던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그리고 곡산부사 등의 목민관 생활과 암행어사 경험을 통해 사회 현실에 눈을 뜨게 됐다.

그는 착취와 빈곤 속에서 고통받는 백성의 현실을 보고 분노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찾아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합리적 제도개혁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그것이 '목민심서'다.



'목민심서' 밑바탕에는 백성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애민정신이 깔려 있다. 다산은 목민관들이 지켜야 할 첫 번째 자세를 '애민'이라는 한 마디로 강조한다. 다산은 목민관을 백성의 부모에 비유하며 마치 자기 자식을 대하듯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백성을 제대로 먹여 살리는 문제인데, 목민관이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목민관이야말로 가장 청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렴하기 위해서는 검소하고 절약해야 하며, 공과 사를 구별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산은 또 목민관은 국가 업무를 처리하는 자리에 있으므로 공정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준법정신과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본적으로 국법에 따라 모든 업무를 처리하면서 더불어 각 고을의 관례를 존중한다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법에 지나치게 얽매인 사람은 아니었다. 고지식하고 완고한 자세에 대해 우려하면서 상황에 따라 백성들의 처지를 고려해 융통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목민심서'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이유는 내용의 뛰어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다산의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이 책의 구절구절마다 녹아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공직자가 섬겨야할 대상은 백성이고 국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21세기 공직자들의 지침서라 하겠다.

/박원철 경기도 청렴대책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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