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치인 980조원을 기록했다. 실제는 이보다 훨씬 높아 심지어 1천500조원이란 설까지 들린다.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면서 관련 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 결정적이다. 400만에 달하는 저소득 가구 중 150만 가구가 빚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채무의 질도 갈수록 나빠지는 추세이다. 가계대출 중 비은행권 대출과 다중채무자가 각각 증가한 것이다. 원금상환 없이 이자만 내고 있는 가구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신용불량자수 누증(累增)은 설상가상이어서 지난해 말 기준 120만~130만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5%에 육박한다.

일전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 가계부채 위험점수가 148점으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의 154.4점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경기부양과 빚 권하는 부동산대책을 이어갈 예정이어서 가계수지는 더욱 나빠질 전망이다. 핵폭탄에 비견되는 미국의 금리인상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서민생활 핍박이 큰일이다. 과도한 채무부담이 소비 위축을 초래해서 경기회복을 지연시킬 공산이 큰 탓이다. 금융소외자 공적 지원기구인 미소금융, 햇살론, 바꿔드림론 등 서민금융지원 3종 세트에 눈길이 간다.

이명박 정부는 삼성, 현대차, LG, 포스코 등 대기업과 은행 및 보험사 등으로부터 10년간 총 2조2천억원의 재원기부약속을 담보로 2008년 7월부터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소득층에 창업자금과 운영자금 등 5천만원까지 연 4.5% 저리로 대출해 준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총 7천억원의 대출실적에다 이용자수만 8만여명에 이른다. 빈곤층 자활지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나 장기간의 내수부진에 돈이 된다 싶으면 불문곡직하고 덤벼드는 대기업의 등쌀에 소자본 창업열기가 식으면서 올해 들어 대출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연체율 증가에 따른 건전성 악화도 주목대상이다. 더욱 걱정은 작년 8월 대법원이 휴면예금 활용을 금지하는 판결로 미소금융의 가장 큰 돈줄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대기업의 추가재원 염출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동안 정부의 강요로 마지못해 출연했었는데 현 정부가 '나몰라' 하는 식이니 말이다. MB 정부의 대표 아이콘인 미소금융이 고사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한국판 그라민은행은 한바탕 해프닝으로 마무리될 개연성이 크다.

6등급 이하의 저신용자에게 지역신용보증재단의 보증을 통해 연리 10%대의 5천만원 이하 생계형 자금 대출상품인 햇살론의 파행 운영은 점입가경이다. 저축은행을 위시한 서민금융기관들의 대출실적이 올 7월 기준 무려 1조원에 육박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무려 5배나 신장한 것이다. 정부가 작년 8월에 보증비율을 85%에서 95%로 높인 결과이다. 햇살론은 대출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민관합동으로 마련한 2조원의 보증자금이 대신 갚아주는 구조여서 부실 저축은행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묻지마 대출'로 연체율이 무려 10%에 이른다.

고금리 채무를 10%대의 은행권 이자로 대환해 주는 자산관리공사의 바꿔드림론의 인기는 대단하다. 최근 하루 평균 신청자수가 최고 64%까지 증가하는 등 현재까지 총 18만건이 접수되었다. 새 정부의 금융구제 코드와도 부합해 연말까지 20만건 돌파는 무난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용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건전성 또한 빠르게 훼손되는 중이다.

기관별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중구난방으로 운영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지고 부실 규모도 점차 확대된 것이다. 원금보전은 언감생심이고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정부드라이브에 기인한 바 크다. 저소득층 금융지원 수요 대비 시드머니도 턱없이 부족한 데다 수혜조건 또한 극히 제한되어 이용률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의 출구전략 임박과 중국의 경기둔화 우려 등 대외악재들까지 염두에 두면 '전(前) 정부의 치적 들러리'로 폄하할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한계가계의 수지개선 필요성이 한층 강조되는 이유이다. '새 술은 새 부대'란 후진 인식부터 청산해야 할 것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