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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1983년 6월1일 인천에서 열린 삼미슈퍼스타즈와 MBC청룡 경기 8회초 2사 만루에서 삼미의 최홍석이 적시타를 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 경기를 차라리 1대0으로 졌더라면, 아니 3루심의 터무니 없는 판정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삼미 김진영 감독의 불같은 항의가 없었을 것이고 상승세를 타던 슈퍼스타즈는 전반기 우승에 이어 가을의 전설에서 장명부·임호균을 앞세워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인천 삼미슈퍼스타즈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만일 그날 경기가 생중계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날 누군가가 김진영 감독이 심판위원장을 향해 '2단옆차기'를 TV중계로 보지만 않았더라면 김 감독은 '사회정의 확립' 차원에서 11일간 구치소에서 콩밥을 먹지 않았을 것이고 약식기소로 100만원의 벌금도 내지 않았을 것이며 시즌이 끝날 때까지 '자숙'이라는 명목 아래 야구장에 복귀하지 못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시민들과 전국의 삼미슈퍼스타즈 팬들에게 1983년은 악몽이었다. 그래서 그 날의 일때문에 삼미슈퍼스타즈는 30승 투수 너구리 장명부라는 걸출한 스타를 보유하고도 우승을 못하는 '비운의 팀'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한국 야구가 시작된 곳 인천. 그래서 한국 야구의 성지같은 곳. 그래서 인천시민들에게 야구가 하나의 종교처럼 열정적이었던 적도 있었다. 인천 야구를 조명하는 '삶의 여백 혹은 심장 야구'(김은식 저)는 마치 죄인이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인천야구의 영광보다 아픔을 처절하게 고백하는 것처럼 들린다. 저자는 말한다. "기업들 사이의 힘겨루기와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져 온 그 맹목적인 승부 집착의 헛발질에 팬들의 자리는 애초에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 잔혹사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바로 인천 야구였고 인천의 야구팬들이었다."



동산고가 배출한 야구 영웅 박현식, 인천고가 배출한 스타 김진영. 고독한 에이스 임호균. 그리고 1982년 창단 그 해 OB베어스와 16번 대결해 16패를 기록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두번이나 20점을 내주며 야구 전광판 관리인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우리의 삼미슈퍼스타즈에 대해 풀어나간다. 책장을 덮으면서 구도(球都)는 부산이 아니라 인천이라는 것. 최강 전설로 다시 태어나는 인천 야구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이영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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