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배 시인
동탄신도시 끝자락에
자리잡은 홍사용 문학관,
묘소를 위압하는 빌딩들과
수많은 차들로 온종일 떠들썩한
석우리보다 산과 풀이 우거진
옛 돌모루가 그리울지도 모른다


노작 홍사용 문학관은 동탄신도시 남쪽 끝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문학관에서 야트막한 산을 오르면 그의 묘소가 있다.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의 이곳은 돌모루라고 불리는 농촌이었다. 돌모루는 석우리의 옛이름이다. 돌모루에는 남양 홍씨의 집성촌이 있었다. 집성촌이라고는 하지만 열 가구 남짓의 작은 마을이었다.

묘소에서 건너다보면 제2동탄 신도시의 건설이 한창이다. 산과 구릉들이 벌겋게 깎이어 드러나고 논과 밭이 길이 되고 마을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덤프트럭들이 줄지어 다니고 시범단지의 아파트가 10층 이상 올라가고 있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난다.

자연이 인간의 욕망에 의해 훼손되는 일은 현대사회에 와서 일상화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자연의 개발이다. 늘어나는 인구를 먹이고 입히고 잠재우고 하는 일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되면서 정치도 정부도 자연의 개발을 필연적인 것으로 보게 되었다. 이러한 개발 논리에는 인간 위의의 철학이 숨어 있다.

인간 위의의 자연관과 개발논리를 철학으로 갈파한 철학자가 헤겔이다. 헤겔은 자연의 생명체들은 각자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을 목적으로, 타자를 수단으로 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자기의 삶의 목적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동물들과도 다른 것이다. 인간은 모든 자연 대상들보다 우위에 있으며 자연 대상물보다 우선하는 목적론적 존재로서 행동양식을 결정하게 된다. 헤겔의 이와 같은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 상호간의 본질적인 내적 연관관계가 간과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도구화를 정당화시키는 빌미를 준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외경스러움이 사라지고 오만과 독선을 부른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과 자연은 목적과 수단이라는 상호관계가 형성되고 자연은 인간에게 유용해야 한다는 수단적 가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수단적 가치를 구현하는 자연 개발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헤겔과 정반대의 자연관과 철학을 제시한 철학자가 칸트다. 칸트에게 자연이란 외경의 대상이며 인간의 이성작용에 의해 상정된 가치인 최고선을 향해 삶의 목표를 달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인간 이성이 자연과 투쟁하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욕구를 실현해 가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자연관이다. 그 과정이 개인에게는 개인사이고 민족에게는 민족사이며 역사이다. 칸트에게 역사는 원초적 자연으로서의 신의 섭리의 역사이며, 동시에 인간의 자유정신이 도덕성과 문화적 가치, 자연과 상호 작용하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칸트의 자연관에는 인류의 도덕적 가치를 지향하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범죄행위로 인간의 도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대적 행위는 결국 자연의 황폐화를 부를 것이며 자연의 황폐화는 곧 인간성의 황폐화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칸트의 경고일 것이다.

동탄신도시가 건설되기 훨씬 전의 일이다. 경인일보 문화부의 김용환 기자가 밤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해왔다. 그 무렵 김 기자는 기획기사로 경기도에 묻힌 시인들의 묘소와 시비를 취재 연재하고 있었다. 노작 홍사용의 묘소를 다녀왔노라고 했다. 매산로의 어느 허름한 술집이었는데 김 기자는 내가 도착하자 그날 취재 후일담을 쏟아놓았다. 노작의 묘소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며 잡초 속에 버려진 무덤처럼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무덤은 화성시 동탄면 석우리 뒷산에 있었다.

며칠 후 수원의 문인들과 돌모루의 노작 묘소를 김 기자의 안내로 찾았다. 여름이어서 산풀들이 우거져 있었고 무덤은 초라했다. 수원과 화성의 문인들이 뜻을 모아 작은 시비를 세웠다. 세월이 흘러 동탄신도시가 들어서고 노작 홍사용 문학관이 개관되고 그의 묘소가 잘 정비되었다.

노작 홍사용은 그의 문학관에서 왕이다. 그러나 눈물의 왕일지도 모른다. 산풀 우거진 옛 돌모루의 정취가 그리울지도 모른다.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묘소를 위압하는 빌딩이 들어서고 수많은 차량들이 통과하고 하루종일 떠들썩한 오늘의 석우리보다 옛날의 돌모루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의 대표작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눈물의 왕이로소이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