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수요일, 안산시 전체가 울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가장 많은 25명의 단원고 학생의 발인식이 엄수된 23일. 유족들과 친구들, 안산 시민은 물론 전 국민이 함께 울었다.
이날 오전 5시께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가장 먼저 발인식이 진행됐다. 6명의 학생이 연달아 부모 곁을 떠났다.
고(故) 박모양의 할머니는 운구차에 박양이 실려나가자 "내 새끼 어디 가느냐"며 울부짖었다. 할머니의 오열에 주변 가족들과 학생들은 모두 참았던 눈물을 동시에 쏟아냈고, 발인식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한 채 한동안 멈추기도 했다.
뒤이어 진행된 고(故) 김모양과 고(故) 장모양의 발인식도 눈물 속에 진행됐다. 참석한 학생들은 마지막 떠나는 친구를 놓지 못한 채 목놓아 이름을 불렀고 가족들은 울다 지쳐 힘없이 쓰러졌다.
오전 8시께 단원병원 장례식장에서도 고(故) 이모군의 발인식이 치러졌다. 모두 다른 교복을 입은 이군의 친구들은 이른 시간부터 장례식장을 가득 메웠다. 이군의 친구들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학교는 달라도 늘 넷이서 붙어다녔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군의 발인식이 진행되는 동안 말이 없는 가운데 흐느끼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이군의 조카로 보이는 유치원생 꼬마는 이것이 마지막 만남인 것으로 아는 듯 이군의 영정 사진을 향해 '안녕'이라며 손을 흔들 뿐이었다.
이군을 실은 운구차는 '영광 속에 나아가자'로 시작되는 구슬픈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조용히 출발했다.
한편 이날 오전 5시께 세화병원에선 발인식을 진행하던 유족들이 또 한 번 상처를 입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故) 문모군의 발인식을 시작하기도 전, 원활한 발인식을 진행하겠다며 장례식장 직원이 문군의 관을 꺼냈기 때문이다.
극도로 예민해진 유가족과 조문객들이 강하게 반발했고, 장례식장과 교육청 등 관계자들의 진심어린 사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어 진행된 고(故) 김모군의 발인식. 김군의 큰어머니는 운구차를 연신 어루만지며 "큰엄마가 맛있는 밥 한 번 못해줬다. 미안하다"며 오열했고, 발인식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슬픔을 참았던 김군의 아버지도 결국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쏟았다.
목포에서 안산까지 4번이나 병원을 옮겨야 했던 고(故) 김모양의 발인식에는 서울, 인천, 전북 무주 등 전국 곳곳에서 친구들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방송반으로 활동했던 김양의 방송반 연합동아리 친구들이다.
함께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박모(17)양은 "늘 활달하고 씩씩한 친구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주 연락하곤 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볼 걸 그랬다"며 펑펑 울었다.
오랜 시간을 돌아 김양을 찾아헤맸던 아버지 김씨는 "우리 ㅇㅇ가 아름답게 살아서 좋은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나와 같은 유가족을 위로해야겠다"고 전했다.
/특별취재반
■ 특별취재반
▲ 반장 = 박승용 사회부장, 이영재 인천본사 사회부장
▲ 반원 = 김대현 차장, 박종대·공지영·윤수경·강영훈 기자(이상 사회부), 이재규 차장, 김영래 기자(이상 지역사회부), 김태성 기자(정치부), 김도현 차장, 임승재·김민재·정운·홍현기·김주엽·박경호 기자(이상 인천본사 사회부), 김종택 부장, 임열수 차장, 하태황 기자(이상 사진부), 임순석 부장, 조재현 기자(이상 인천본사 사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