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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가·연출가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무엇이냐? '거센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란다. 신라 신문왕 때, 신비로운 대나무가 있었다. 왕이 명하기에,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었다. 실제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어려운 일이 모두 해결됐다. 적병은 도망가고, 질병이 나아졌다. 풍랑이 심할 때 피리를 불면, 물결은 평온해졌다. 만파식적은 전해졌는가? 삼국유사에 '이야기'로만 존재한다. 만파식적을 보았는가? 신라의 '천존고'에 보관했단다. 그런데 도난을 당했고, 다시 찾았다는 얘기만 무성하다.

지난 달 연극을 보았다. '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전말'(김민정 대본, 박혜선 연출)이다. 이 작품에선 만파식적이 갖는 신통력은 중요치 한다. '만파식적'과 같은 존재를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런 존재를 빼앗으려는 사람 간의 암투를 다룬다.

만파식적을 다룬 연극을 보면서 국악과 입장이 참 다름을 확인한다. 국악에선 만파식적을 '대금의 원형'으로 본다. 청성곡(淸聲曲)'을 듣노라면 대금을 통해서 세상을 다스린 만파식적을 어렵지 않게 연상케 된다. 국악의 입장에선 '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전말'은 참 발칙하다. 연극의 입장에선 만파식적을 아직도 신비주의의 범주로 생각하는 국악이 미욱스럽게 답답할지 모른다.

요즘 영화 '제보자'(임순례 감독)가 화제다.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됐음을 밝혀내는 과정을 치밀하게 다룬다. '진실'과 '국익'이 팽팽하게 맞선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외면당한 '진실'을 밝혀내려는 과정은 매우 소중하다. 영화 '제보자'를 보면서, '만파식적'을 떠올렸다. 줄기세포도, 만파식적도, '애초에 없었다.' 만파식적도 그저 여느 피리와 다름없는 존재다. 왕권 강화 혹은 국익 차원에서 조작됐을 뿐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라. 일본은 만파식적이란 존재에 궁금증을 갖게 되고 이를 자신들이 소유하고자 탐을 낸다. 연극 '만파식적 도난 사건의 비밀'과 상통한다. 영화 제보자의 엔딩은 원래 지금과 달랐단다. 지금은 '진실'에 손을 들어주는 해피엔딩이나, 원래는 그렇지 않았단다.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진 건 똑같다. 그러나 추종자들은 이를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법정에서 나왔을 때, 'PD추적'을 비난하고 '줄기세포'를 옹호하는 피켓의 행렬이 보인단다. 진실보다 더 강한 것이 국익이냐!

이제 음악으로 돌아가자. 예나 이제나 근심걱정을 악기로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은 똑같다. 여느 대금일지라도 이를 만파식적으로 믿는다면, 수용자의 입장에선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반면 '줄기세포'는 아주 다르다. 그건 오히려 믿는 사람에게, 믿지 못할 결과를 가져다주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한다. '만파식적'과 '줄기세포'가 이렇게 같지 않다.

만약 우리 시대에 만파식적과 같은 악기가 존재한다고 치자. 당신의 반응은 어떨까? 부탁컨대, 그 악기의 실체를 찾는 일을 그만뒀으면 한다. 이건 존재하지 않는 줄기세포를 추적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만파식적'이 실존한다면, 또 다른 권력이 되고, 암투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암투의 거센 파도가 일지 모른다.
'만파식적'을 모두의 마음에 존재케 하자. 그 악기를 마음으로 불어보자! 그리하여 내 마음의 갈등과 불안을 해소케 하자. 만파식적은 비록 '실체'는 없다. 그럼에도 만파식적은 줄기세포와는 참 다르다. 당신이, 내가, 모두가, 만파식적을 마음 속에 영원히 보관할 수 있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