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항일수기 중 최고의 작품
장준하 서거 40년 기념 개정판
6천리 항일대장정 애국심 가득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말자”

■돌베개┃장준하 지음, 돌베개, 460쪽, 1만6천원.


돌베개는 장준하가 광복군이 되기 위해 일본군을 탈출할 때, 아내에게 남기기로 한 암호였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를 빌어 아내에게 보낸 편지 속에 “앞으로 베어야 할 야곱의 ‘돌베개’는 나를 더욱 유쾌하게 해 줄 것이다”라고 다짐을 남겼다. 그렇게 돌베개와 같은 장준하의 항일대장정이 시작된다.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는 현존하는 항일수기 중 최고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의 돌베개는 1971년 부터 그가 ‘사상계’를 펴내던 사상사에서 처음 출간돼 여러번 간행돼왔다. 이번에 새로 개정된 돌베개는 장준하 서거 40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간행된 책들의 수많은 오류와 누락 부분을 바로잡아 전면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책은 ‘지나사변(일본인들이 중일전쟁을 일컫는 표현)’ 7주년 기념 회식을 치르고 있는 일본군 부대를 장준하 일행이 탈출하면서 시작한다. 온 부대원이 만취한 틈을 타 목욕을 가는 것 처럼 행장을 꾸민 장준하 일행은 오로지 광복군에 합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지겠다는 일념 하나로 탈출을 감행한다.

죽을 것 같은 배고픔과 뒤따라오는 일본군의 추적을 가까스로 피해 중국 중앙군에 몸을 피했고,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에 가기 위해 6천 리의 길을 걷는 대장정에 오른다.

하지만 죽음의 대장정 끝에 만난 임시정부의 모습은 파벌 싸움에 병든 닭 같았다.

장준하는 임정각료는 물론 충칭 교포들까지 다 모인 자리에서 “가능하다면 일군으로 돌아가 일군 항공대에 지원해 임정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다. 왜놈에게서 받은 설움은 다 잊었단 말인가. 그 설욕의 뜻이 아직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네 당, 내 당하며 겨누고 있을 수가 있는 것이냐”라고 분노를 토해내기도 했다.

광복 이후 김구 주석의 비서로 지내던 장준하의 삶은 고뇌의 연속이었다. 민족의 지도자가 30여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지만, 환영 인파조차 없었고,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이념적 소용돌이에 갇혀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광복됐음에도 온전한 정부를 가지지 못하는 회한에 괴로워하며 강대국 손에 놀아나는 민족의 운명을 지켜보며 장준하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일본군을 탈출해 눈덩이를 베개 삼아 수수밭에 누워 극도의 갈증과 배고픔 속에 장준하는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때 그 눈베개는 아마도 후손에게 욕된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그의 단호한 의지가 담긴 돌베개와 같았으리라.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