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84주년을 앞두고 4대 항일 항쟁지이자 유일한 무장투쟁지였던 화성지역의 '3·1만세운동'을 주도한 36명의 사진이 발굴됐다.

기록으로만 전해져온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입수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화성 3·1운동의 전모를 실증적으로 밝혀내줄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화성시 3·1운동 유적지 학술조사단을 이끌고 있는 수원대 사학과 박환(46) 교수는 20일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지금까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화성지역 독립운동가 수형(受刑)카드를 일일이 조사한 끝에 36명의 사진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번에 입수한 사진들은 1919년 3월 26일부터 4월초까지 송산, 우정, 장안면 등에서 전개된 3·1운동을 주도하다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들로 1920년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들 사진에는 송산면 지역의 3·1만세운동을 주도한 홍면옥(1884~?, 농업), 홍준옥(1888~1945, 면서기) 형제의 사진과 왕광연(1872~1951, 농업), 문상익(1892~1960, 면서기)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사강리 시장과 송산면사무소 등을 중심으로 1천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3월 28일 만세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을 해산하고 주도자를 체포하기 위해 총을 쏜 사강리경찰관주재소 일본순사부장 노구치(野口廣三)를 처단한 혐의로 기소돼 12년동안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다.

3·1운동 주동자들은 대부분 소요죄로 처벌됐으나 중형인 내란죄로 기소된 것은 이들이 유일하다.

또 1919년 4월 3일 장안면사무소와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우정면 화수리경찰관주재소를 전소시킨 뒤 주민들에게 발포한 일본순사 가와바타(川端)를 때려 숨지게 했던 장안면 석포리의 차병한(1885~1933, 훈장, 5년징역), 차병혁(1889~1967, 농업, 3년징역), 윤영선(1894~1967, 2년6월징역) 등과 장안면 수촌리의 김응식(1879~1944, 3년징역), 김종학(1885~1925, 2년6월징역) 등도 포함돼 있다.

박 교수는 “그동안 화성의 만세운동이 제암리교회의 피해로만 알려져 왔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게 이번에 입수한 독립운동가들의 경찰 신문조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며 “이번에 입수한 사진들을 통해 4대 항일 항쟁지이자 유일한 무장투쟁지였던 화성지역의 3·1운동사를 이해하고 복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번에 입수한 사진을 토대로 앞으로 '화성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지역사 측면에서 본격적인 연구가 요청된다”며 “특히 이번에 입수한 사진 중 차경현 등 13명이 정부에 의해 국가유공자로 포상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이들에 대한 연구와 함께 후손들을 통한 공로 인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화성시는 오는 3월1일 제암리 만세운동 재현행사시 후손들에게 사진을 전달하고 순국기념관 등에 전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