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영안현 발해진 흥륭사 석등. /대지중 제공 |
고구려 계승 인정될까 불안
3년 전 발해 유적을 답사했을 때 기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답사 내내 조선족 가이드는 주변을 경계했고, 그에게 수없이 많이 들었던 말은 ‘중국 사람들이 오면 곤란하니까 빨리 보고 떠나자’는 것이었다.
가장 황당했던 것은 정혜공주 무덤에서였다. 고분군 출입구에 만들어진 커다란 문을 통과하려 하자 가이드가 큰 소리로 ‘한 발짝이라도 들어가면 큰일 난다’고 외치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자유롭게 드나드는데 한국인은 출입이 금지됐다는 것이다.
수십 미터 앞에 정혜공주 무덤이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가갈 수 없어 유적을 덮어놓은 구조물만 멀리서 사진에 담아올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에 의하면 과거 입구를 지키던 사람이 한국인을 들여보냈다가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들어가면 자기도 불이익을 받기에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발해 유적에 대해 한국인들을 통제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막상 눈앞에 있는 유적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답사 당시 출입을 제지당하거나 접근을 못 하도록 펜스를 만들어 놓은 유적은 정혜공주 무덤 외에도 정효공주 무덤, 서고성 유적, 삼릉분 유적, 상경성 발굴지 등 중요한 유적지들이었다.
왜 중국은 발해 유적에 한국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중국이 발해를 그들의 역사로 만드는 것에 당당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
중국이 유적의 접근을 막으면서까지 역사를 왜곡해야 하는 이유는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동북 3성에 사는 조선족 동요를 막고, 북한 정권 몰락 상황이 생겼을 때 발생할 수도 있는 국경 분쟁에 대비할 목적 등에 있는 것이다.
조선족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는 현재 중국 영토로 돼 있는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는 물론 발해 역사도 중국 역사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지 않은 말갈족의 나라이고, 당나라의 한 지방 정권이었기에 중국 역사라고 주장함은 물론 중국인들에게 철저하게 교육까지 하고 있다.
당시 발해 사람들은 자신을 고려인으로 생각했고, 일본에서도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보았으며, 발해 건국자 대조영이 고구려인이었다는 사실 등을 통해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역사였다. 온돌 장치, 불상, 기와, 무덤 구조 등을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또 중국에서나 사용했던 연호를 발해가 독자적으로 사용했던 점과 당이 외국인을 위해 실시했던 과거 시험인 빈공과에 발해 사람들이 응시했다는 점 등은 발해가 중국과는 다른 독립된 국가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당나라 세력을 쫓아내고 고구려보다 큰 영토를 지배했던 나라인 발해에 대한 관심이 멀어진다면 발해 역사는 자칫 중국사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한국사 시간이 아니라 세계사 시간에 발해 역사를 배우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발해 역사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 당당한 한국인, 떳떳한 발해 후손이 되기 위해 우리의 역사 연구를 잠시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장문 대지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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