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밀라 목사님은 제 믿음의 어머니입니다."

   전밀라 목사와 인천에서 2년간 생활하고 6·25전쟁 당시 부산과 제주도로 피란을 함께 다녔던 방순자(82·여) 목사.

   그는 1949년 인천 동구 창영동의 기독교 사회관에서 야간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사회관의 이옥신 선생, 전밀라 목사와 같은 주택에서 생활했다.

   그는 "당시 전 목사님은 하루종일 교인 가정을 돌며 기도를 했고 저와 이 선생님은 계몽운동을 하러 다녔다"며 "밤에 한방에 모이면 저와 전 목사님은 전구에 양말을 끼워 구멍난 것을 꿰매고 이 선생님은 소설책을 읽어주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부산으로 피란을 갔을 때는 방 목사와 이 선생이 뜨개질로 번 돈으로, 제주도에서는 교회에서 주는 전 목사의 생활비로 셋이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방 목사는 "전 목사님은 말수가 적으셨고 한번도 본인이 힘든 것에 대해서 표현한 적이 없으셨다"며 "남을 흉보는 말, 낙심하는 말을 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방 목사는 전 목사에 대해 "설교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본인이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 설교와 생활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한편, 그는 "6·25전쟁 당시 창영교회 1층이 북한 인민군 장교들의 병원으로 점령돼 있어 언제 잡혀갈지도 모르는데 전 목사님은 바로 2층에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릴 정도로 담대하고 용기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 목사님이 은퇴 후에 예배가 끝난 뒤 돌아오다가 칼로 위협하는 강도를 만났는데도 그것을 몇달이 지난 뒤에야 담담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밝혔다.

   지난 1967년 목사안수를 받고 1996년에 은퇴한 방 목사는 "지금도 기일때마다 전 목사의 둘째 조카가 담임목사로 있는 구기교회를 찾고 있다"며 전 목사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윤문영기자·moono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