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다시 한번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총선 직후 손 대표는 총선후 3개월 내에 치러지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며 평당원으로 복무할 것을 천명한 것이다.

사실 손 대표의 이같은 결정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후 1년여, 몰락하는 야당 대표로서 살신성인의 심경으로 뛰어든 서울 종로에서 고배를 마셨다. 본인 선거도 실패했을 뿐 아니라 당의 개헌저지선(100석) 확보에도 실패한 만큼, 당내에서 계속 입지를 확보하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부에 대한 책임 논란으로 당내 혼란이 확산되기 전에 서둘러 거취를 표명함으로써 진화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패의 책임을 따지는 시비에 휘말리기 보다는 차라리 깨끗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손 대표가 이대로 정계에서 자기 흔적을 지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목표치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방'으로 해석할 수 있는 총선 결과를 이끌어냈고, 당내에 그를 추종하는 신흥세력도 심어놓은 상태이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당권에 도전해 당을 확실하게 접수하는 것도 해 볼만한 일이다.

하지만 차기를 다시 노려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작전상 후퇴가 불가피 하다는 것이 손 대표 측근들의 해석이다. 지난 1년간 너무 많은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탈당,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패배, 총선패배 까지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 도전해 연속적인 실패를 맛봤다. 따라서 다시 한번 당 대표 경선에 나서 호남세의 텃세에 상처를 입는다면 회복불능의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에서 완전히 이탈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와관련 한 측근은 "손 대표는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을 미루지 않는 정치역정을 걸어왔다"며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정치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한나라당 경선을 앞두고 대중의 반향을 이끌어냈던 민심대장정이 1차였다면, 이제 손 대표는 차기 대권을 노린 5년의 민심대장정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