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오전 6시가 조금 넘자 안개가 자욱하게 낀 파주시 문산읍 임진강역 주차장에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속속 도착했다. 개성 육로 관광을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은 경의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로 이동해 약 1시간 동안 출경수속을 마친 뒤 개성가는 버스에 올랐다.
오전 8시20분께 출발한 버스는 시속 30∼40㎞의 속도로 비무장지대로 접어든 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으로 향했다. 고려왕조 475년의 흥망성쇠가 아로새겨진 역사교과서 속의 도시 개성이 뛰어나와 남측 관광객들을 맞았다.
#시간은 멈췄다

거의 말라버린 하천은 검푸른 빛을 띤 채 겨우겨우 흐르고 있었고, 하천 주변에는 여기저기 쓰레기 더미들이 눈에 띄었다.
근래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버스를 따라 피어오르는 모래먼지가 황량함을 더했다.
주위의 산은 녹색이 아니었다. 나무들이 모두 베어져 나간 산은 허연 속살을 처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차창으로 스쳐지나치는 건물들의 창문 너머로 북한 사람들 살림살이도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 봐온 60년대 우리네 살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 개성공단은 예외였다. 번듯한 공장은 물론이고, 남한 직원들의 사무실이나 사택 등으로 쓰이는 현대식 건물들이 공단을 채우고 있었다.
도로도 우리 스타일이었다. 신호등과 교통표지판, 노면표지, 보도블록 등도 완전히 똑같았다. 북한 근로자들의 출퇴근용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개성 당일 육로 관광은 시내에서 27㎞ 정도 북쪽에 자리한 박연(朴淵)폭포부터 시작됐다. 박연폭포는 화담 서경덕, 황진이와 더불어 '송도3절(松都三絶)' 중 하나로 유명하다.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37 높이에서 시원스럽게 낙하했다.
박연폭포를 지나 산을 오르자 고려 때 쌓은 대흥산성과 대리석관음보살상이 있는 관음사가 나왔다. 원래는 대리석관음보살상 두 개가 있었지만 하나는 평양의 중앙역사박물관에 보관됐고, 현재는 한 개만 남아 관광객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점심식사 장소는 민속여관이었다. 조선시대 한옥단지를 여관으로 개조, 1989년 개장한 민속여관에서는 개성 토속음식들을 놋그릇에 담아내오는 '13첩 반상'이 관광객들의 허기를 달랬다.
오후 일정은 빡빡했다. 고려말 충신 정몽주가 피살된 선죽교와 고려시대 성균관, 성균관 안의 고려박물관, 정몽주의 집터에 지은 숭양서원 등을 돌아보는 코스였다. 하차는 하지 않았지만 버스는 얼마전 전소된 우리 남대문과 똑같은 양식이라는 개성 남대문 주위도 한바퀴 돌았다. 당일 관광 코스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외에도 개성에는 고려시대 첨성대, 궁궐터인 만월대, 영통사, 왕건왕릉, 공민왕릉 등 고려가 남긴 문화유산들이 산적해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다

관광이 끝난 뒤 출경수속 때는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 메모리를 일일이 확인, 관광지 외 현지 생활상이 찍힌 사진 등은 모두 삭제하게 했다.
무엇을 찍었는지 확인이 불가능한 필름 카메라와 일회용 카메라 등은 아예 갖고 들어갈 수조차 없다.
버스 안에서 북측 안내원은 묻지도 않았는데 "가로수 밑동에 흰색 페인트를 칠한 것은 위생과 미관을 위해서입니다"고 굳이 설명했다. 하지만 위생과 미관을 위한 나무 밑동 흰색 페인트는 전체 나무가 아닌 도로 옆 가로수들에만 칠해져 있었다. 이런 가로수들은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가로수 밑동의 흰색 페인트는 가로등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입장에서 개성 육로 관광은 체제의 현실을 공개할 수밖에 없는 결코 쉽지 않은 시도였을 것이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길을 텄기에 '프레임 고정'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모를 일이다. 숭양서원을 찾았을 때 바로 옆 야산에서는 유치원생과 부모들이 소풍을 나와 있었다. 내내 조용했던 그네들이 관람을 끝내고 나온 관광객들이 지나가자 갑자기 우리에게도 익숙한 노래 '반갑습니다'를 흥겹게 부르며 광란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개성시내를 다닐 때도 이상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먼저 미소를 지으며 이상하리만치 친절하게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들 뒤 건물 사이사이로는 또 다른 얼굴들이 스쳤다. 버스가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듯 몸을 숨긴 채 고개만 삐죽 내민 사람들의 눈동자가 우리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