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일보=취재반]경기북부지역에 산재한 군사격장과 군부대 인근 야산 등 군사시설보호구역이 민간인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국방부장관이 설정한 군사시설보호구역은 군사 목적과 군 작전을 위해 철저히 보호돼야 하지만 민간인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자유롭게 출입하고 있다.
사격장 주변 마을 주민들은 제 집 처럼 사격장을 드나들며 탄피를 수거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사격장 무단 출입이 가능한 것은 해당 군부대의 허술한 관리 때문이다.
포천시 보장산 인근 사격장 마을은 최근 몇몇 주민들이 사격장에서 포탄 파편을 수거해 나오다 경찰에 붙잡혀간 탓인지 마을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마을 주민 이정수(가명·45)씨 등 4명은 지난 달 30일 오전 여느 때처럼 사격장에서 포탄 잔해를 수거해 나오다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김씨 등은 "사격장을 마음대로 왕래한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한 서울 모 경찰서 소속 형사들에게 검거됐으며, 이들은 현재 군수사기관에 이첩돼 조사를 받은 뒤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앞서 같은달 17일 연천군 다락대 사격장 피탄지역을 무단으로 출입한 민간인이 초소 근무중인 군인들에게 붙잡혔다. 그는 놀랍게도 경운기를 몰고 들어가 전차포 파편을 수거해 나오던 중이었다.
연천군과 포천시는 수천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재인폭포 인근 전차사격 피탄지, 지장산 일대 피탄지 등의 경계 초소와 출입문 등에 '군사보호구역내 민간인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 표지판을 세워 각종 안전사고를 막고 있다. 하지만 표지판은 무용지물이다.
실제 경기북부에 위치한 사격장 입구 3곳을 확인한 결과, 사격장 입구에는 출입 통제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지만, 큼직한 자물쇠로 잠긴 출입문 옆으로는 5~8개 정도의 공간이 있었고 이 공간마다 불법 침입한 흔적인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민간인의 무단 출입이 자유로운 군사시설보호구역은 사격장만이 아니다. 경기북부 군부대 인근 야산의 경우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인 만큼 잘 보전된 자연환경이 오히려 민간인 채취업자들에겐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다. 군사시설보호구역내 산간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수목과 식물들이 민간인들의 출입으로 인해 마구 훼손되어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각종 질병과 보신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헛개나무, 가시오가피, 마가목, 벌나무 등이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 26일 찾아간 포천시 창수면 보장산 7~8부 능선에는 80~100년 가량된 고목 밑둥이 잘린 채 흉물스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이들 나무는 주독 해소에 효능이 좋다고 알려진 헛개나무로 서울 등 외지에서 찾아온 전문 '꾼'들에 의해 잘려져 나간 것이다. 야산을 헤집고 두시간 가량 올라가자 껍질이 벗겨진 엄나무 등 야생목들이 낫과 톱으로 베어지고 꺾여 마치 폭격을 맞은 듯했다.
현재 포천 , 연천, 가평 등 경기북부 자치단체에서 산림보호강화사업, 보안림 관리, 산불방지 사업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산림 녹지 공무원은 3~4명에 불과하다.
공무원들은 "깊은 산속에서 이루어지는 채취와 벌목 현장을 포착하기는 힘들다"며 "실질적인 단속이 어렵다"고 군사시설보호구역내 산림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음을 인정했다.
파주 또한 대부분의 산들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 많다. 하지만 최근들어 산림이 인삼밭 등 농경지로 불법 개간되면서 상당부분 훼손된 상태다.
지난해 경기도는 파주시와 연천군의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지역의 불법 산림훼손 실태를 일제 조사한 결과, 산림 5천200여㎡를 불법 개간해 사용한 사례 3건을 적발했다.
적발 내용은 허가없이 민통선인 파주시 군내면 읍내리 산림 200㎡와 연천군 백학면 두현리 산림 3천㎡를 훼손해 묘지로 사용하거나 연천군 왕징면 작동리 산림 2천㎡를 개간해 과수원으로 사용해 산지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기도는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민통선 지역에서 임야를 불법으로 개간한 사례 등 총 20여건(25.5㏊)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경기북부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역 특성상 관내에 많은 군부대가 상주하고 군사시설보호구역이 많지만 오래전부터 지역주민과 외지인들이 출입해 왔다"며 "그동안 군부대에서 별 관심이 없다가 천안함 사고 등 남북 관계가 악화된 최근에서야 지자체에 협조공문을 보내고 단속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