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오동환 객원논설위원]참으로 무섭고도 신기한 건 태풍이 고요를 안고 온다는 점이다. 직경 500㎞도 넘는 태풍 바람바퀴 한가운데 고요의 '태풍의 눈'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건 '마녀의 배꼽'이 아니라 '신(神)이 돌리는 거대한 맷돌 구멍'이다. 신비롭게도 시계 바늘 반대 방향으로 도는 그 거대한 '태풍 맷돌' 한가운데에 뻥 뚫린 직경 20~30㎞의 제주도만한 눈이라니! 더욱 신묘한 건 또 그 태풍의 눈 속에 떠 있는 둥근 지붕 모양의 구름인 '허브(hub)운'이고 그 평화스런 '허브 구름' 속으로 철새 떼가 유유히 날아간다는 것이다. 기상학자들은 '소용돌이 태풍 바퀴의 중심에 가까울수록 원심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퀭하니 뚫리는 정온(靜穩)한 기상현상이 바로 태풍의 눈'이라고 말하지만….

'태풍의 눈' '태풍 일과(一過)' '태풍 직전의 고요'라는 말과 '태풍이 지나면 고요가 온다'는 영국 속담도 있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실감할 수 없다. 이번 한반도를 관통한 '곤파스'는 제조공장은 태평양이지만 브랜드는 '메이드 인 저팬'이다. 네덜란드어로 제도(製圖) 도구를 뜻하는 '콤파스(kompas)'의 일본식 표기가 '곤파스'다. 아무튼 곤파스가 할퀸 상처는 크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과 쓰나미(津波)는 1천209명의 목숨을 뺏었고 9·11피해의 10배인 2천억 달러의 손해를 끼쳤다. 그 두 달 뒤엔 중남미도 강타, 1천400여명이 숨졌고 과테말라의 한 마을은 산사태로 800명이 한꺼번에 숨졌다. 작년 7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게이츠가 매년 미 남동부를 휩쓰는 허리케인에 도전하고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비법이야 태풍의 제조공장인 해수면 온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끔찍한 자연 재해 때마다 '신의 박해'가 아니라 오만방자한 한 줌 인간들에 대한 '신의 경고와 응징'이라고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지만 아무튼 대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 본연 본태(本態)로 돌아가 겸손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는 계기가 되는 것만은 틀림없지 않나 싶다. 머리가 위로 돋아 있는 인간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