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종 (정치부 차장)
[경인일보=정의종기자]지난 4일부터 실시된 국정감사가 영 신통찮게 돌아가고 있다. 정치권의 무성의와 준비부족으로 내용이 없다보니 피감기관에 대한 흠집내기, 군기잡기식이고 여야 정파간에는 정략적인 힘겨루기 모습만 보인 채 파행감사를 재연하고 있다. 준비가 제대로 안돼 있다보니 감사장엔 '배추통'이 난무하는 등 카메라를 의식한 한건주의식 감사가 만연해 시작부터 맥빠진 분위기이다. 그래서 국감장 주변엔 '임시국회와 다를 바 없다'는 반응속에 국감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구태정치의 연속이라는 지적이다.

금년 국감의 경우 민주당의 당 대표 경선일정과 여권의 무성의로 인한 준비 부족으로 냉대 받기 십상이었다. 사실 국감은 '야당의 잔치'라고 할 정도로 야당의 몫이 크다. 집권여당의 국정에 대한 실책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알리고 대안 제시를 통해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호기'인 것이다. 그러나 국감 하루 전날 전당대회 일정이 짜여져 있다보니 더 치밀하고 계획적인 감사를 준비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방패의 역할인 여권에서는 야당의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국감을 희석시키는 전략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정부가 자료제출을 미루거나 거부하고, 증인들이 온갖 이유와 사정을 들이대며 해외로 속속 빠져 나가는 이유도 김 빠진 감사를 만들기 위함일 게다.

그러다보니 배추정국이 국감을 뒤흔들고 있다. 배추 한 포기 값이 지난해 이맘때보다 5배나 폭등하면서 국정감사 단골메뉴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것. 지난 4일 열린 국감에선 채소수급을 관장하는 농림수산식품부는 물론 기획재정부, 환경부 등에도 여야의원들의 질의와 질타가 이어졌고, 기획재정부 국감장에는 배추와 양배추, 상추를 탁자에 올려놓고 "배추는 (한 통에) 1만5천원이고 양배추는 8천원, 상추는 100g에 3천500원"식의 감사가 진행됐다. 배추가 최대 이슈로 떠오른 것은 서민경제와 직결돼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배춧값 폭등의 진원지로 4대강 사업이 지목되면서 급기야 '배추국감'으로 전락해 버린 것. 4대강 사업으로 시설채소 재배지가 줄었느니, 경작면적이 왜곡·부풀려졌다느니 하면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아마 4대강 사업을 폄하하기 위해 배춧값 폭등과 연결시켜 사태를 키우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야당의 이런 공격에 기다렸다는 듯 강공 드라이브를 걸면서 물타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배춧값 문제와 4대강 사업을 연결하는 야당의 전략이 '침소봉대'라는것을 입증시켜 비교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국정감사가 이처럼 국정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반적인 감시가 아니라 여야의 심리전으로 진행되다보니 서로 목소리만 커지고 대립전선이 형성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국정감사는 갈수록 비대해지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건강한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데 소중한 헌법적 장치이다. 결산을 검사하고 예산안을 확정하는 것이 국회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할때 이제부터라도 국회의원이 대오각성해 해당 상임위별로 현안 사업을 꼼꼼히 챙겨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물론 배춧값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시적인 배춧값 문제에 함몰돼 더 중요한 국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면 행여 앞으로 있을 개헌논의 때 국정감사 폐지론마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