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흔적을 느끼며 남한산성 성곽로를 따라 걷는 하남 위례 둘레길. 제3암문 인근 정상에서는 하남 춘궁동과 시가지가 시원스레 보인다.

[경인일보=글┃하남/조영상기자]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고 있는 하남시. 서울시의 강동구, 송파구와 인접해 있고 한강을 경계로 구리시와 남양주시와 붙어있다. 여기에 남한산성을 중심으로는 성남시와 광주시에 접해 수도권 중동부 교통의 요충지로 꼽히기도 한다.

역사적, 지역적 특징을 내포해 옛 지명의 역사적 유래를 담은 길의 의미에서 명칭된 '하남 위례길'이 시민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각 길의 특성을 살려 '둘레길' '역사길' '사랑길' '강변길' 4개의 코스로 이뤄진 하남 위례길은 4계절 모두 시민들에게 건강과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단순히 '걷는다'는 의미보다는 각 길 마다의 의미를 알고 이용해 본다면 그 재미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 성곽로를 따라 걷는 사색의 시간… 그 멋에 취하다

시작이 어디인지, 끝이 어디인지 몰라도 된다. 그저 발길 닿는 곳이 시작이고 발길 멈추는 곳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될 터이다. 그래서 둘레길이 좋다. 그저 둘레둘레 마음 끌리는 대로, 기분 나는 대로 발길을 옮기면 되기 때문이다.

몇십년만에 불어 닥친 한파라고 한다. 때문인지 손과 발은 물론이고 매서운 칼바람에 얼굴마저 찢어지는 듯 날씨가 매섭다. 다행히 착용한 아이젠 덕분으로 그 어떤 눈길도 무섭지는 않았다. 온몸을 꽁꽁 싸맨 덕분에 추위는 한결 참을 수 있었다.

위례길은 지난해 7월 하남시가 하남둘레길 복원사업 계획을 수립한 뒤 지난달부터 복원공사가 한창으로 오는 7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중이다.

특히 지금 소개될 둘레길은 15㎞로 위례길 4개 코스 가운데 가장 길다. 하남시청에서 시작해 덕풍골과 이성산, 금암산, 남한산성을 지나 벌봉과 객산, 샘재까지 이어지는 이 코스는 7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기 때문에 한번 정상에 올라서면 그때부터는 쉬엄쉬엄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내려오면 된다. 또 너무 힘들다 싶으면 중간중간 내려올수 있는 길이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단,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가장 먼저 시청에서부터 시작해봤다. 뽀드득 뽀드득 전날 내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가장 먼저 밟아 보는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그 쾌감을 어찌 알 것인가.

지금부터 둘레길을 걸으며 차례대로 나타나는 볼거리를 함께 보며 떠나보자.

▲ 등산객들이 남한산성 옆 봉암성에 있는 벌봉을 지나 새바위, 객산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걷고 있다.

# 역사의 흔적을 느끼며 하남시를 한눈에

위례둘레길을 걷다보면 이성산, 금암산, 남한산성 연주봉과 성곽, 벌봉, 객산에서 현재의 하남과 옛 백제의 왕도를 한 눈에 느끼며 둘러볼 수 있다.

길은 대체로 평이하다. 약간의 오르막 길이 있었지만 그만큼 내리막 길도 편하다.

그다지 좁지도 않다. 대부분 남한산성 축조때부터 이미 만들어졌다는 산길이기에 두명 정도는 서로 비켜가기 충분하다. 이 길의 매력은 길을 따라 만나는 볼거리들이다.

옛 조상들이 적군과 대치하기 위해 능선을 깎아 만든 길에서부터 시작해 잠복해 있다 적군을 물리친 S자 모양의 길, 그리고 적을 위협하기 위해 만든 동물 모양의 바위 등은 많은 볼거리 중 하나다.

'호랑바위'는 옛날 덕풍약수터 동남쪽 약 20m 지점에 논자락을 끼고 있는 큰 바위를 말한다. 옛날 정서방이라는 아주 힘센 장사가 이 바위로 호랑이를 잡았다고 한다. 영물을 잡은 죄로 관가에서 곤장을 맞았으나 호랑이 가죽을 관가에 바쳤으므로 상금도 같이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위례둘레길에는 산딸기, 보리수, 진달래꽃이 많은데 봄이면 어린시절 마을 뒷동산에서 뛰어놀다 배고프면 따먹던 향수도 느낄수 있다. 봄이 되면 제일 먼저 시골소녀처럼 소박한 노란 꽃을 피우고, 잎을 따서 손으로 비비면 생강같은 향기가 코를 톡쏘는 생강나무, 나무껍질이 백색이라 숲속의 신사라고 불리는 자작나무숲을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민족의 정기와 기상을 상징하며 피톤치드(식물이 스스로 내는 항균성 물질)가 가장 많이 나오는 소나무숲에서의 상쾌한 삼림욕은 위례꾼들이 '덤'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위례둘레길에는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기둥을 사이좋게 합쳐서 살아가는 '연리목(連理木)'이 여러 그루 있다. 연리목은 부부의 좋은 금실을 상징하므로 부부나무,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위례길을 걷는 부부와 연인들은 모두 금실이 좋아질 것이고, 아울러 하남시민들도 연리목처럼 서로의 신뢰와 화합으로 하나가 될 것이다.

'벌봉'은 남한산성옆 봉암성에 있으며, 남한산성 암문 밖에서 이 바위를 보면 벌처럼 생겼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공격할때 이곳의 산 봉우리로 아군이 피신했는데 갑자기 수없이 많은 벌이 날아와 청군을 쏘아 아군의 승리를 도왔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병자호란때 청 태종이 정기가 서려 있는 벌봉을 깨트려야 산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해 이 바위를 깨트리고 산성을 굴복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벌봉은 해발 512m로 남한산성의 수어장대(497m)보다 높기 때문에 남한산성의 서쪽 내부와 동쪽 성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병자호란 당시 이 지역을 청나라군에 빼앗겨 적이 성 내부의 동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으며, 화포로 성안까지 포격할 수 있었다.

'법화사지'는 문화재자료 제86호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다. 법화사지는 조선 중기(17세기)의 절터로 병자호란때 조선 원두표 장군의 계략에 의해 청나라 양고리 장군이 이곳에서 전사했는데 후일 매부인 청나라 태종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법화사라는 절을 지었다. 현재 법화사지에는 초석 일부와 화강암의 석탑조각들이 남아있다. 남아 있는 석탑조각은 옥개석 부분인데, 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절터 아래쪽 30m 지점에는 발처럼 약간 평평한 터에 3기의 부도가 서 있다.

'객산(客山)'은 하남시 교산동에 있으며, 해발 301m의 산이다. 옛날에 마귀할멈이 한양에 남산을 만들려고 이천의 도드람산을 떠가지고 치마에 싸서 한양으로 가다가 너무 힘이 들어 놓고 갔다해, 타지에서 들어왔기에 객산이라고 했다한다. 객산에 있는 선법사에는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보물 제981호)이 있고, 그 옆에는 객산폭포와 백제 온조왕이 마셨다는 어용샘이 2천년간 쉼없이 흐르고 있다.

하남 위례둘레길 주변에는 이성산샘, 덜미재샘, 국청사샘, 벌봉샘, 선법사샘 등 곳곳에 길을 걷는 위례꾼들의 목을 축여줄 샘물이 많다.

하남 위례길 주변에는 길을 걷는 위례꾼들의 배고픔을 달래 줄 맛있는 먹거리도 아주 많다. 이런 것을 먹어보는 것도 위례길을 걷는 또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