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글·사진┃가평/김민수기자]가평군은 경기도 최동부에 위치하며 전체 면적의 81%가 산지다. 동쪽은 강원도 춘천시와 홍천군이, 서쪽은 남양주시와 포천시, 남쪽은 양평군, 북쪽은 강원도 화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가평은 숲, 계곡, 바위, 강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장으로 높은 산, 깊은 계곡에는 아직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이름없는 용소(龍沼)와 폭포들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자연경관과 생태자원, 역사 등을 간직한 가평군은 지난해 4개 코스의 '가평올레길'을 개장하고, 오는 4월 6개 코스 등 총 10개 코스의 테마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가평올레길은 수변과 친환경시설 등이 포함된 '마을형', 시가지와 계곡·명산·농촌지역 등을 걷는 '건강형', 체험마을·산림·폭포·호수 등을 걷는 '계곡형'으로 나뉘어 손님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가평올레길은 보기에 따라 다채롭기도 하고 단조롭기도 하다. 사람마다 그 의미 부여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곳이 가평올레길이다.
하지만 자연친화적인 탐방로를 걷는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아무 생각없이 자연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을 듯싶다.
가평올레길 탐방에 나선 날은 영하 15도까지 기온이 뚝 떨어져 혹한의 날씨였다. 계곡은 추운 것을 넘어 이내 정신을 맑게 해주었고, 상쾌한 기분으로 탐방을 시작했다.
이번에 찾은 올레길은 가평올레길 3코스로 승안리 아홉마지기마을에서 시작해 용추계곡-중산리-내곡분교-전패삼거리-우정고개(전패고개)-국수당으로 이어지며 16㎞ 구간에 7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소 길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나 경사도가 완만해 큰 무리는 없다. 그러나 인가가 없고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 간식 등을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감수해야 한다.
가평올레길 3코스는 연인산도립공원을 동쪽(가평읍 아홉마지기마을)에서 서쪽(하면 국수당마을)으로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기도 하다.
# 현재를 등지고 과거로 향하는 발길
먼저 아홉마지기마을(승안리)에서부터 옛길로 접어들어 본다.
혹한의 7시간이라는 부담과는 달리 첫 발걸음은 경쾌하다. 게다가 출발지에는 여러 사람이 웅성거리며 출발을 서두르고 있어 벗이 생긴 것처럼 설레기까지 하다. 출발지의 승안리길은 넓고 완만한 길과 오솔길로 조성된 올레길로 나뉘어져 있다. 걷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그러나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조금 후면 그들도 자연을 벗삼아 걷고 있을 테니까. 승안리는 구한말까지만 해도 승안산(升安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는 이곳 고을 전체가 어찌 보면 산으로 연이어져 있기 때문이란다. 또한 이곳은 1871년 기록된 가평읍지에 따르면 민가가 100여호나 됐다고 한다. 무척이나 방대한 고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승안리를 뒤로 한 채 잠시 후 살을 에이는 바람이 한차례 휘몰아친다. 바람이 이제부터 계곡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려준다. 용추구곡에 들어선 것이다. 1851년(철종2) 성재 유중교, 김평묵, 유인석 등 당대 인재들이 이곳을 찾아와 승안산 일대의 자연경광을 두루 구경하고 중국의 무리구곡보다 더 아름다운 비경이라 찬탄하며 아예 터를 잡고 정착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용추(龍湫)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는 유명 관광지다. 휘몰아치는 모양새가 마치 용이 누워있는 듯하다 해 와룡추(臥龍湫)라 불리며 가평8경 중 하나다. 와룡추(용추폭포), 무송암, 탁령뇌, 고실탄, 일사대, 추월담, 청풍협, 귀유연, 농완계 등이 옥계구곡 또는 용추구곡으로 불린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왼편으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산과 산 사이의 마을이라는 뜻의 중산리다.
중산리를 지나자 인가가 점차 사라진다. 이후 1시간여가 지나자 이제부터는 바람소리 뿐이다. 눈과 귀만을 열어 둔 채 묵언수행을 흉내내며 걸어 보기로 한다.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오는 듯하다. 자연이 주는 아늑함이 느껴지며 몸속에 에너지가 생겨나는 느낌이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물안골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물이 풍부한 안골이라는 물안골, 주위가 온통 하얗다. 계곡을 가로지르면서 문득 발 밑의 세상이 궁금해진다. 수량이 풍부하다는 이곳, 아무 기척도 없다. 소리마저도 얼려버린 이 겨울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계곡은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들로 넘쳐나 최상의 하모니를 이룰 것이다.
지금의 물안골은 집터만이 존재한다. 양지바른 곳이면 어김없이 집터가 자리를 잡고 있다.
물안골을 지나자 '참다운 새 한국민이 되자 유신과업 수행에 앞장서자'라는 표어를 내건 내곡분교가 뼈대를 들어낸 채 꿋꿋하게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멈춘 역사의 현장이다.
내곡분교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지만 아마도 예전 이곳 주변 마을은 산촌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번성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내곡분교는 1962년 3월 2개 학급으로 내곡분실이란 이름으로 개교해 1979년 3월 폐교됐다고 한다. 분교 폐교를 기점으로 마을도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내곡분교를 지나자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한참을 오르던 중 금방 지나간 듯한 노루의 발자국이 보인다. 이방인의 소리를 듣고 줄행랑을 친 듯하다.
분교와 얼마 떨어지지 않아서인지 곳곳에 집터들이 즐비하다. 이곳은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며 수수, 콩, 도토리 등을 많이 수확했으나 화전민 철거정책 이후 전나무, 잣나무 등을 식재해 지금은 화전터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누가 봐도 예전에 밭이었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윽고 전패삼거리에 다다른다. 전패는 후고구려의 궁예가 패전 후 일시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갔다 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긴나무가 많은 땅이라는 설, 상고사 시대부터 섭나무를 쌓아올린 귀틀집이 있던 곳이라는 증패설 등 많은 전설이 전해진다.
전패삼거리는 가평읍 용추, 북면 백둔리, 하면 마일리의 갈림길이다.
가평올레길3코스도 이제는 막바지다. 하지만 길진 않지만 이제부터는 오르막이다. 잠깐이지만 숨이 턱에 찬다. 등골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가쁘게 숨을 쉬며 우정고개에 오르니 시야가 시원하다. 한숨 크게 몰아쉬어 본다. 상쾌하다.
잠시 주위의 산들을 바라본 뒤 이내 하면 마일리 국수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올리던 (성황)당 고개가 있었다고 해 이 고개를 국사당 고개로 부르다가 후에 국수당 고개로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힘들다 싶더니 올레길도 이제부턴 내리막이다. 하지만 내리막길이라고 쉽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고개를 내려오니 집터와 함께 숯 가마터가 보인다. 놀라운 것은 이곳의 샘물은 이 추위에도 얼지 않고 있다. 이런 곳에 옛 사람들은 집을 짓고 숯가마에 불을 지폈다. 선인들의 안목에 감탄이 절로 난다
산 사이로 흐르는 계곡을 따르니 콧노래가 절로 난다. 어느덧 7시간이라는 시간을 거쳐 도착지인 국수당마을에 도착한 것이다.